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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ul 19. 2019

벌레가 주는 선물

귀촌 후 삶이 저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입니다


아내가 결군을 임신했을 때 아내와 저는 중국 심천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때 당시 중국은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수거하지 않았습니다. 종량제 봉투도 없어 검은 비닐봉지에 음식물이며 온갖 쓰레기를 모두 담아 한 곳에 내놓았습니다. 이런 이유인지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화원도(중국에서는 아파트 단지를 화원이라 부릅니다) 바퀴벌레는 언제나 득실득실했습니다.


 주방에서 음식을 하다 보면 손가락 두 마디 만한 바퀴벌레가 싱크대를 지나다니는 일은 다반사였습니다. 가끔 어떤 녀석은 '잡아볼 테면 잡아봐'하고 가만히 자신을 드러내 놓고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때 나는 어김없이 배가 산만한 아내를 부르곤 했습니다. 아내는 이 큰 녀석을 손에 집히는 무언가로 때려잡은 뒤 태연하게 휴지로 집어 휴지통에 넣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벌레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바퀴벌레라면 상상만 해도 닭살이 오를 정도였죠. 결이 고운가(귀촌해서 지은 우리 집 이름)에 우리 가족이 몸을 담은 지 3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는 요즘은 벌레들의 세상입니다. 문을 꽁꽁 닫고 있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엄청난 오산이었습니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벌레들은 어떻게든 집으로 들어옵니다. 얼마 전까진 집게벌레 그리고 딱정벌레 같은 아이가 방바닥을 기어 다니더니 요즘은 돈벌레가 자기 집인 양 우리와 살고 있습니다. 


"아빠, 저기 돈벌레 있으니까, 밟지 마, 조심해야 돼""아빠, 저 딱정벌레 아직도 저기 있네, 우리 집이 좋은가 봐""아빠, 돈벌레는 익충이야, 죽이면 안 돼" 아내는 선녀벌레, 바퀴벌레 같은 해충만 아니면 집안에 들어온 벌레는 죽이지 않습니다. 결군 또한 엄마를 보고 배워서인지 익충과 해충을 구분하고 익충은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집에 벌레가 들어와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쿨내 나는 아이입니다. 


돈벌레, 학명은 그리마


 어젯밤, 물을 마시러 주방에 가니 싱크대에 커다란 돈벌레가 기어 다닙니다.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 다리가 여러 개 달린 징그러움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를 않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휴지를 뜯고 바로잡았을 터인데, 이제는 애써 태연한 척 물을 마십니다. 외모는 참 징그럽지만, 돈벌레는 익충입니다. 심지어 물지도 않습니다. 인간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습니다. 집안에 돈벌레가 한 마리라도 보이면 그 집엔 바퀴벌레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합니다. 돈벌레는 웬만한 해충의 알들을 다 먹어치우니까요. 이제 저는 벌레를 보면 그 벌레가 익충 인지 해충인지 생각해본 후 벌레를 대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생각이고 나발이고 징그럽게 생겼으면 무조건 죽이던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저를 느낍니다. 귀촌 후, 결이 고운가에서의 삶이 저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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