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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Aug 02. 2019

개미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할까

개미도 지금을 살려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는 걱정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살던 오래된 주택가 동네의 뒤편에는 수정산이라 불리는 자그마한 언덕 같은 산 같지 않은 산이 있었다. 그 수정산이 정말로 지도를 펼쳐보면 적혀있는 진짜 산 이름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 게임으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때가 아니어서 친구들이 뭐 좀 놀아보려 하면 어디든 가야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리고 가야 했던 그곳이 수정산이었던 적이 꽤 많았다. 이름이 수정산이니까 수정이 많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무작정 수정을 캐러 친구들과 작은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언덕을 낑낑거리며 올라가는데 까만 비닐봉지가 꿈틀대는 게 눈에 띄었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보니 그때까지 내가 배운 숫자들로는 도저히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개미들이 어떤 커다란 벌레를 새까맣게 감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검은 봉지로 보인 것이다. 문득 밟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새까만 검은 봉지를 밟았다. 그 개미들이 징그러워서 무서워도 아니었다. 그냥 밟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옆 친구가 말했다. "야, 하지 마 인마, 개미들의 세계를 짓밟아 버리면 어떡해!"


 개미들의 세계, 난 한 번도 그 작은 곤충들의 세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친구의 그 말이 그 세계의 문을 열어 준 것인지 그날 밤 난 꿈을 꾸었다. 언제나처럼 친구들과 수정산을 오르고 있었고 오르며 보이는 개미를 짓밟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고 위를 쳐다보니 나이키라고 쓰여 있는 집채만 한 운동화가 우리를 덮치는 꿈이었다.  



  '한 번 읽어봐야지'라는 말만 수없이 되뇌게 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드디어 완독했다. 개미를 읽는 동안 어린 시절 내가 가졌던 개미들에 대한 상상을 꺼내어 볼 수 있어 좋았고 이 소설은 개미를 좋아하던 베르베르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쭈그리고 앉아 개미의 움직임을 관찰하길 즐겨 하는 아들 결군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은 개미의 외모와 행동을 곤충 백과사전을 방불케 할 만큼 자세하게 묘사했으며 개미의 심리학적인 면모도 섬세하게 나타냄으로써 개미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설파하고 있는 듯 보인다. 개미의 세계는 미시 세계이고 인간의 세계는 거시 세계라는 고정적인 관념보다는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두의 세계는 상대적인 세계라는 것이다.


개미를 통해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정보들 중에는 겨레에게 알리기가 적합하지 않은 것이 있다. 어떤 정보들은 <형이상학적인>고뇌를 불러일으키는데, 그런 고뇌에는 아직 해결책이 없다. 그래서 겨레는 고민만 하고 대응책을 찾지 못한 채 기력이 쇠잔해진다. 그것은 모두에게 아주 해롭다. 겨레에 독성 물질이 생겨나 모두를 중독시켜 버린다."



사실 난 이 부분을 읽으며 조금 놀라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개미들이 정말 저런 생각을 한다면 공자, 노자, 소크라테스 희대의 철학자들과 맞짱토론도 가능한 거 아닌가. 불혹의 나이에 갖는 모든 고민들을 개미에게 진지하게 상담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미들이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감시하는 비밀 군대라니... 내 주위에도 답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엄습해오면 그 자리에서 공중분해시켜버리는 비밀 군대가 나를 감시해주었으면 했다. 개미의 세계가 그렇듯 인간의 세계 또한 유익한 스트레스와 형이상학적인 악성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유익한 스트레스는 지금을 버리지 않으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악성 스트레스는 지금을 살지 못하게 함은 분명하고 미래 또한 장담하지 못하게 된다. 원형탈모는 덤이다. 개미도 원형탈모가 있을까.


개미도 지금을 살려 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 개미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feat 개미야,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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