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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Aug 07. 2019

아빠의 휴가와 아홉 살의 감수성

아홉 살 아들의 눈물에 많은 생각이 드는 오늘입니다


얼마 전 <EBS건축 탐구 집> '마당 있는 집'에 출연을 했고 방송이 되었습니다. 어제 유튜브에도 올라왔길래 아내와 함께 다시 보게 되었어요. 방송에서 제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이 곳으로 온 후 여행 생각이 잘 들지 않아요, "


'오버하네~'라고 바라보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휴가는 집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휴가라고 해봐야 주말 포함 토, 일, 월, 화, 수 이렇게 5일이지만요. 휴가 마지막 날인 오늘 아침, 부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CBS 음악 FM에서는 빈센트가 흘러나옵니다. 데크 창문, 평상 창문, 주방 창문을 모두 열고 빗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곳 양평으로 귀촌 후, 제게 안겨온 선물들입니다. 


서울로 볼일을 보러 떠난(?) 아내는 저녁에서야 돌아올 예정이고 해서 아홉 살 아들 결군과 단 둘이 오늘의 휴가를 즐기기로 했습니다. 저희 동네 시골학교에서는 방학 후에도 약 10일간 돌봄 교실을 운영합니다. 면소재지에 위치한 수영장에 가서 수영도 하고 학교에서는 영어, 수학놀이도 합니다. 


오후 3시 30분쯤 돌봄 교실에서 돌아온 아홉 살 결군이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옵니다. 


"아빠!!!!"

"오늘 뭐하고 놀지?"


늦은 점심으로 라면에 밥 말아먹으며 영화를 보던 저는 깜짝 놀랍니다. 무엇보다 들어오자마자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뭐하고 놀지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저 아이의 놀이 갈구에  더 놀랍니다.


결이고운가의 수영장에 입수 전, 먼저 뒷마당에서 축구를 하기로 합니다. 아빠와 아홉 살 아들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뒷마당에서 누가 먼저 열 골 넣나 축구시합을 시작합니다. 결군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의 절묘한 점수 조절로 10대 9의 짜릿한 승리를 얻어냅니다. 그리고 곧바로 결이 고운 워터파크로 뛰어듭니다. 이곳은 괌 PIC 부럽지 않습니다. 3시간 정도는 그냥 순삭입니다. 2.2*1.6*0,6의 작은 인텍스 수영장이지만요. 벌써 저녁밥 먹을 시간이 됩니다. 아빠는 짜파게티 요리사가 되어 양파 가득, 계란 프라이 가득 담긴 짜파게티를 끓여냅니다. 그릇에 담아내는데 창문 캔버스는 온통 붉게 물든 하늘을 담아 보여줍니다.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멍하니 있다가 아들을 부릅니다. 


"결아!! 창밖 봐봐!"


곧이어 결군이 다다다다 달려옵니다.


"우와!"


아홉 살 아들은 크게 한번 감탄하더니 또다시 다다다다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들리고 망원렌즈가 달리 카메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는 현관 밖으로 뛰어 나갑니다 '찰칵찰칵' 소리가 주방까지 들려옵니다. 결군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작은 화면에 담긴 자기만의 세계를 아빠에게 보여줍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한마디 합니다.


"아빠, 인생 사진이야!"




아홉 살 아들은 어디서 이런 말을 배운 걸까요. 아빠는 이에 질세라 감탄에 감탄을 남발합니다.


"대박!! 정말 결이 인생 사진인걸!!!"


사진을 한 참 들여다보는데,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홉 살의 눈이 노을처럼 붉어지더니 쪼르르르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립니다.


"아빠, 갑자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밖이 깜깜 해지는 걸 보고 있는데 엄마가 없으니까 이상해"


아홉 살의 감수성 폭발에 아빠의 가슴도 뜨거워집니다. 

아들이 아빠의 허리를 껴안습니다. 

아빠는 아들을 꼭 껴안아 줍니다.



몇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갑니다. 

주변이 깜깜해지면, 집 안에 있는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세상의 전부 인 거구나.

엄마는 더더욱.

약 1년 전 결군의 엄마는 면소재지 사회복지관에서 잠시 일을 했었습니다.

6시에 퇴근을 했지만 집에 오면 6시 30분, 해가 지는 시간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결군은 앞 집에서 엄마가 돌아오는 때까지 2시간 정도 지내야 했습니다.

아빠품에 안겨있던 결군이 나지막이 말합니다.


"아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으면 너무 슬플 거 같아" 


결군은 그때 괜찮다고 내비쳤었지만 그 당시의 불편했던 감정들이 스며들어 있었나 봅니다. 너무나도 작고 어린아이들을 두고 저녁에서야 볼 수 있는 맞벌이 부부들의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엄마 아빠를 위한답시고 불편한 감정들을 애써 드러내지 않는 어른 아이 같은 여덟 살, 아홉 살 아이들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아홉 살 아들 결군의 눈물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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