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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Aug 08. 2019

죽여 마땅한 사람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지 않을까


직장생활을 경험하며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적이 있었을까. 


 조직 내에서의 기상천외한 인간 군상들을 경험해 본 직장인들이라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감정 그 이상을 원할 때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이다. 실현 가능성 1 도 없는 상상 속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상상이 아닌 현실 속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보면, 나에게 정말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불행한 일이다. 가능하지 않은 일이며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자체가 괴롭고 힘든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만약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이 불행하지 않다면? 마땅히 죽여야 할 사람을 내가 죽였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평범하게 태어나 삶에 커다란 굴곡 없이 자라온 사람이라면 혐오스러운 얼굴과 감정으로 사이코패스라 외칠 것이 자명하다.


 얼마 전에 읽은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의 릴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의 사이코패스이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며 이병헌을 죽이려 드는 보스처럼 어렸을 적 성적 모욕감을 안겨준 남자를 죽여  우물에 매장시켜 버리고 양다리를 걸친 남자 친구를 거침없이 살해한다.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는 그 과정에 릴리가 입은 극단적인 상처 즉 독자로 하여금 '반드시 저놈은 죽여야 해'라고 할 만큼의 전조들은 보여주지 않는다. 죽일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누가 봐도 그냥 사이코패스인 것이다.


 극적 반전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소설은 만족감을 충분히 선사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극적 효과를 연출했음은 물론 열린 결말까지 반전 스릴러의 중요한 요건을 두루 갖추었다. 한 가지 이 소설의 특이한 매력은 사이코패스인 릴리를 독자들로 하여금 응원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우리 깊은 심연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죽여 마땅한 사람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고 릴리는 살인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며  내면을 결코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가는 직장인의 어두운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인물이라서 아닐까 생각해본다. 


복잡한 철학도 사유도 없다. 그럼에도 그저 답답한 현실에 카운터 펀치 한방 시원하게 날려보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킬링타임용 소설도 없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마지막 한 페이지에 담긴 열린 결말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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