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케이크에 꽂을 초를 새기도 힘들다.
요즘 꽤나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아내이다. 근데 아내가 바쁘지 않은 날이 있었나? 아무튼 바쁘게 지내는 와중에도 도서관에 다니며 열심히 책을 읽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요나스 요나손, 이 글을 참 재미있게 쓰네. 언어유희가 있어."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같은 말이라도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의 말은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소설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 책 속의 한 문장이 살아움직이며 내 등을 간지럽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상상하지 못했던 말이 무심하게 튀어나온다. 문맥상 크게 의미 없는 문장들은 스쳐 지나가곤 하는데 굳이 하나하나 읽어 나가게 된다. 난 이런 느낌이 오는 책은 보통 깔끔하게 완독을 한다. 말을 재밌게 하는 소설가의 책은 대부분 재미있게 마련이다.
요즘 야근을 반강제적으로 하고 있는 나는 책을 읽을 시간이 많지 않다. 집에 오면 밤 10시, 씻고 나면 10시 30분, 다락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아내와 오늘의 일상을 나누고 나면 11시, 안락의자 옆, 아들의 15센티미터 자로 책갈피를 대신하고 있던 책을 집어 들고 3장 정도를 넘기면 나의 정신은 이미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떠나곤 한다. 이런 나에게 전자책은 혁명이었다. 회사에서도 차 안에서도 책을 가까이할 수 있었다. 전자책의 듣기 기능은 하루 2시간 출퇴근 차량에서 보내는 나에게 꿀이었다. 책을 듣는다는 것이 이렇게 좋다니...
아내의 말에 교보문고 도서관 앱에서 요나스 요나손을 검색했다. 헛... 이 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작가. 몇 년 전인가 라디오에서 한참 책 광고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잠깐 검색을 해 보기도 했었고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도 들었었다. 하지만 난 읽어보진 않았다. 100세 노인이라니...완전 식상...왠지 모르게 유치할 거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독서하고 징글맞게 거리가 멀었던 놈이 뭘 그렇게 따졌던지... 흠
전자책으로 대여를 하고 회사에서 출퇴근 차량에서 들었다. 전자책으로 보면 눈 버린다는 아내의 말에 집에서는 도서관에서 빌린 아날로그 책으로 읽었다. 아내의 말처럼 술술 들리고 읽혔다. '헛, 이 노인 꿀잼이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꾸부정한 허리로 무심한 듯 내뱉는 알란의 한마디 한마디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알란은 100년간 있었던 세계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인물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가방 줄이 초등학교 3년인 그가 원자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종지부를 찍게 되어 트루먼 대통령과 친구가 되고, 구 소련의 스탈린, 스페인 프랑코,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과 만남을 갖는다. 이러한 플롯에 어이가 없기도 할만한데 요나스 요나손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이야기를 잘 이끌어 나간다. 이러한 만남에 나는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양로원의 삐걱거리는 창문에서 뛰어내린 100살 먹은 노인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리가 배웠던 세계사 책의 어딘가에 적혀있는 그 무겁고도 진지한 역사적 사건들은 특별할 것 없는 알란이란 사람에 의해 가벼워지고 우스워지게 되어 버린다. 요나스 요나손이란 사람이 지난 100년간의 역사가 맘에 들지 않아 비꼬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요나스 요나손은 독자로 하여금 그 무거운 역사를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어버리곤 하는 알란이 다음은 어떤 역사적 사건을 털어버릴지 기대하게끔 유도했고 난 거기에 걸려들었다. 알란이 다시 어떤 사건으로 뛰어들려는데 내 차는 회사에 도착해버리면. 잠시 일은 제쳐두고 전자책을 열고 그 사건에 빠져들고는 했으니 말이다.
100살이라, 내가 100살까지 살 수 있을까. 실비보험은 100살까지 보장받는 것으로 하긴 했는데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feat.아내는 80살까지 들었다.미안) 아니, 그것보다 100살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조금이라도 재미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그렇지 않다면 100살까지 살아있는 들 뭔 의미가 있을까. 100살이 되기 2시간 전, 알란이 창문을 넘은 이유는 슬리퍼에 이름을 써 놓아야만 하는 양로원에 갇힌 스스로가 비참해 어쩌면 생을 마감하려 넘어간 것이 아닐까. 양로원 직원이 생일 케이크에 꽂을 초를 새기도 힘든 100살 노인에게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상은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