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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Aug 23. 2019

이래서 낚시하는 거였어?

그래 이런 이유였다.


축구, 야구, 볼링, 배드민턴, 탁구, 등등 활발한 움직임이 있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받아들일 수 없는 취미가 하나 있다. 세월아 네월아, 가만히 앉아 찌만 바라보고 있다가 오르락내리락 찌가 움직이면 훅 낚아올리는 바로 낚시다. 어렸을 적, 집 근처 논가에서 보리 비슷한 모양을 한 개구리밥이라고 하는 풀을 꺾어 논두렁에 앉아 있는 개구리의 코앞에 대고 살랑거린다. 그러면 마네킹처럼 가만히 눈알만 굴리던 개구리는 먹음직스러운 파리를 한입에 삼키듯 넙죽 물어버린다. 나는 개구리 밥풀의 줄기를 낚아채듯 들어 올리고 개구리는 풀을 물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다. 개구리의 무게로 개구리밥 줄기는 심하게 요동치며 그 진동을 나에게 전달한다.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 느낌이 말이다. 개구리가 넙죽 개구리밥을 물었을 때, 줄기를 타고 손목으로 어깨로 그리고 전두엽으로 전해지는 강렬한 짜릿함. 내가 개구리를 잡아서 뒷다리를 튀겨먹을 것도 아니었는데, 그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동네 친구들과 자주 이러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짜릿함이 낚시꾼들이 줄곧 이야기하는 그 '손맛' 이었던 것이다. 




한해 한 해가 지나갈수록 친구가 적어진다. 원래 친구가 많지 않은 나이지만 그나마도 줄어들고 있다. 다행히 대학교 때 친구 놈 하나가 연락의 끈을 놓지 않고 연락을 해온다. 잊을만하면 나뿐만 아니라 그 시절같이 어울렸던 후배, 선배에게도 연락해 만남의 시그널을 전파하고는 한다. 얼마 전 그 친구 놈이 오래간만에 시그널을 날렸다. 용인의 한 낚시터에서 하루를 놀자는 거였다. 총 4명, 우리는 모이기로 했다.


 좀 비싼 방갈로를 구했다고 하더니, 낚싯대를 드리우며 바라보는 전면 풍경이 기가 막힌다. 화장실, TV, 에어컨, 주방시설 겉에서 보면 꽤나 허름해 보이던데 있을 건 다 있다. 친구 놈이 이 정도면 5성급 스위트룸이란다. 바늘에 지렁이도 꿰어보고, '이런 걸 물고기가 먹으려 할까?'라는 의문과 함께 곡물에 물을 섞고 비벼 꾹꾹 뭉친 미끼도 꿰어본다. 몇 번의 어설픈 낚싯대 드리우기 시도 끝에 멀리 찌를 던지는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엄청 편한 자동차 시트에 몸을 맡긴다. 폐차장에서 사 온 건지 낚시터의 자동차 시트는 기가 막힌 안락함을 선사한다. 푹신하게 앉아 찌와 내 앞에 펼쳐지는 수묵화를 감상한다. 조용히 앉아 찌를 바라보는데, 너무나 조용하다. 얘기 소리도 안 들린다. 가끔 '퐁당'하고 호수에 바늘이 빠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공부 안 해도 되는 독서실이 따로 없다. 그러는 순간 떠올랐다. 아, 너무 좋다. 겁나게 좋다.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무념무상이 이런 거로나' 생각이 절로 든다. 이래서 낚시, 낚시하는구나. 



밤늦게까지 낚싯대를 드리우다 잠들었다. 새벽녘에 누군가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후배 놈이 주섬주섬 옷을 입더니 터벅터벅 걸어나가 낚싯대를 드리운다. 새벽 4시다.  "야, 이 시간에 뭐 하는 거야??"라고 물으니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란다. 컴컴한 주변이 뭔가 움직이는 것 같다. 군대 야간훈련처럼 주변에 시선을 모아 어둠을 그쪽으로 몰고 나니 꽤 많은 이들이 이 시간에 나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잠이 훅 하고 달아나버렸다. 가만히 서서 조금씩 밝아오는 호수 반대편의 풍경을 감상한다. '아... 좋다... 또 좋다... 그냥 좋다... 이래서 낚시하러 오는구나.' 하며 다시 한번 감탄한다. 


사실 낚시 자체에 큰 흥미를 느낀 것은 아니다. 손맛에 빠진 것도 아니다. 낚시터의 고요함과 적막함에 둘러싸인 이 멋진 풍경이 맘에 들었다. 친구 놈이 불현듯 또 연락해오면 다시 따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월을 낚는 게 낚시라더니 시간이 무엇에 낚인 것인지 순삭이다. 고민 많은 40대에 무념무상으로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꽤나 흥미로운 것이다. 그것 중에 하나가 낚시였다니. 난 이제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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