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어색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하는 소설 한자와나오키
통쾌하다고 한다. 포털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한자와나오키'라는 소설은 누군가 소개하기를 직장인들이 열광하는 통쾌한 한방이 있는 책이라고 했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부제가 '당한 만큼 갚아준다', '복수는 버티는 자의 것이다'인 만큼 직장인들이 듣기에 속 시원한 문구이기는 하다. 나 또한 최근 직장에서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부조리를 겪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한자와'라는 소설 속 인물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약한 자들은 당할 수밖에 없다'라는 사회적 통념을 저 멀리 걷어차 버리고 당한 만큼 되갚아주는 모습들을 보며 상상 속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이 소설의 흐름은 지루한 순간이 없을 만큼 타이트하게 진행된다. 소위 엘리트라 일컬어지던 은행원 '한자와'는 은행 내에서의 부조리에 처참하게 당한다. 그는 권력의 구둣발에 짓밟혔지만 다시 일어나려 애쓴다. 다시 일어나서 제자리를 찾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게 아니라 당한 만큼 갚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실제로 당한 만큼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되갚아준다. 사내정치의 희생양이 되면 회복 불가한 현실 속 직장인의 처지와는 다르다. '과연 이 같은 되갚음이 가능한 일인가' 의구심이 든다. 아니 사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래서 '한자와' 가 만들어내는 카운터펀치들은 이를 보는 나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해 준다. 한때 유행처럼 번진 퇴사 에세이를 통해 사직서를 가슴에 품기만 하는 직장인들이 위로를 받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소설처럼 직장 내에서 저토록 악랄한 캐릭터는 사실 드물다. 면전에서 가족을 들먹이며 협박하고 지위가 높다고 반말과 욕설을 섞어가며 더러운 배설물을 토해내듯 괴롭히는 그런 상사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부조리한 상황은 분명히 있다. 상사에게서 내려오는 부조리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다. 그 상사는 윗선과 아래 선의 중간에 끼여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이렇게만 해야 하는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팀원들에게 암묵적으로 요구 아닌 요구를 한다. 같은 부조리이지만 소설 속의 악랄한 그것과 다른 부분이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이해하려는 노력이 조금 싹을 틔우고 어물쩍 동조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부조리는 이렇게 익숙해져 가고 나는 점점 무감각해진다. 불쑥 이 상황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때뿐이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변함이 없다. 동료들과 함께 상사를 씹어대며 풀었던 30대 때와는 달리 아이가 커가며 늘어나는 경제적 부담, 나이는 늘지만 갈 곳이 적어지는 40대의 직장인은 동료들과 쑥덕거리는 일조차 버거운 게 현실이다. 그렇기에 소설 속 40대 직장인 '한자와'가 펼치는 가슴 뻥 뚫리는 리벤지는 상상과 현실 그 미묘한 경계에서 나에게 서툰 쾌감을 선사한다. 소설에 빠져있는 동안은 두근두근, 통쾌, 상쾌의 감정이 주식의 상한가처럼 붉게 치솟다가도 소설이 끝나고 나면 하한가처럼 파랗게 내리꽂혀버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