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도 나는 뭐든 써보려 한다.
글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한 꼭지, 한 줄 쓰려면 내 머릿속 희미했던 뉴런들은 여기저기서 서서히 빛을 발하며
좌뇌에서 우뇌로 위에서 아래로 이동한다. 크리스마스트리 위에서 반짝이는 전구들처럼 반짝거린다. 기껏해야 별것도 아닌 일상의 행위들을 적어보려는 것뿐인데, 머릿속은 복잡하다. 여전히 키보드 위에 얹은 손가락은 움직일 줄을 모른다.
떠오르지 않는 것들을 떠올리려 하는 과정은 썩 편하지 않은 감정들을 동반하지만 마침내 손가락은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짧은 호흡의 문장들이 얽히더니 기어코 사소한 일상이 그려진다. 나의 하루, 일주일, 한 달은 그렇게 기록된다.
일주일에 5일, 주 5일 동안 제2영동고속도를 50여분 동안 운전하여 회사로 출근을 한다. 잠금 화면에 비밀번호를 넣으면 전 날 작업하던 코드들이 오색빛깔을 내며 펼쳐져 있다. 누군가의 코드들을 가져다가 짜깁기한 흔적들로 어지럽다. 그 위로 브라우저를 띄우고 '오늘은 뭔 일이 있을까' '트럼프는 뭔 말을 했을까'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과 동시에 마우스 휠을 드르륵 훑는다. 누군가 생산해낸 생각들을 읽는다. 아웃룩 익스프레스를 열고 메일을 확인한다. '아 이번 달 회식 공지를 해야 하는구나' 문득 떠올라 '새 전자메일' 버튼을 누르고 메일을 쓴다.
"안녕하세요. 9월 팀 회식을..."이라고 시작하며 다음에 쓸 말을 생각하다 멈춘다. 이전에 보냈던 메일을 열어 마우스로 죽 긁어다가 컨트롤씨를 눌러 복사한다. 생각을 멈추었던 그 글에 컨트롤 브이를 눌러 붙여 넣고 날짜만 바꾼다.
이틀 전이었나? 여느 때처럼 퇴근하고 다락에서 아내와 시간을 보냈다.
이런저런 대화 중, 노트북을 펼치고 오랜만에 네이버 양평 카페를 들어가 보니 이런 제목이 눈이 띈다.
"에어컨을 켜야 할까요?"
더운 기운이 좀 가시긴 했지만 근래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좀 습하고 끈적이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켜세요", "끄세요", "참으세요", 별거 아닌 게시글에 상대적으로 꽤 많은 댓글이 달려있다.
어찌 보면 바보 같을지도 모르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진지하게 답변하고 있다.
생각하는 일이 귀찮을 때가 많다. 단순한 메시지 하나를 전달하려 해도 전에 쓰던 것을 그대로 쓰고 싶고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다 귀찮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지난날을 기록하는 일은 이렇듯 나를 잠식해가는 잔잔한 일상의 호수에 얕은 파동을 일으킨다.
애써 생각해내려는 노력의 끝에 다다르고 하나의 자그마한 글이 완성되면
내 삶은 내가 살아내고 있다는 거창한 외침이 귓가에 들려온다.
글을 만들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뭐든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