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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Sep 11. 2019

페루? 스위스에도 라마가 살아요

아들에게 침을 뱉었던 그 과나코를 닮은 라마가 말이에요


스위스에서 지내던 어느 날,  차를 타고 산을 내려가는데 뒷자리에 타고 있던 꼬꼬마 결군이 갑자기 외칩니다.


"아빠! 저기 과나코가 있어!"


'과나코라고?.. 에이...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엄마와 아빠는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 안에서 다섯 살 아들이 외치는 과나코라는 말을 들었지만, 꽃보다 청춘에서 유희열, 윤상, 이적 형님들이 페루에서 보았던 그 라마처럼 생긴 과나코라는 동물이 스위스에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흘려보냈습니다.

이 녀석에게 과나코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동물일 겁니다. 결군이 세 살 때였나요. 주말이면 결군과 함께 서울 동물원으로 향하고는 했습니다. 장기출장이 너무나도 많았던 아빠가 동물을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물 중 하나였습니다. 어느 주말, 우리 부자는 어김없이 서울 동물원으로 향했습니다. 엄청난 대참사가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아빠, 오늘은 남미 관부터 보자"


평소엔 코끼리, 코뿔소, 하마, 그리고 곤충관 이런 순서로 아랫동네부터 훑어보던 녀석이 오늘은 남미관이 위치한 윗동네부터 구경하자고 제안합니다. 나무늘보 하고 개미핥기부터 만나보겠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유모차를 끌고 아랫동네의 커다란 동물들과 중간 동네의 새들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며 영차영차 올라갑니다. 그리고 남미관의 문턱에서 결군은 그 분과 조우를 하십니다. 과나코라는 녀석이죠. 낙타과의 동물로 실제로 등에 혹만 없을 뿐 낙타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좀 귀엽게 생겼는지 결군은 창살 사이로 코를 들이대고 킁킁거리는 과나코의 앞으로 얼굴을 가져가 자세히 관찰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퉤엣!"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결군과 저는 서로를 쳐다보며 2초간 멍하니 있었더랬죠. 주변 사람들도 무대 위 주인공을 쳐다보듯 결군을 빤히 쳐다봅니다. 그 주인공의 얼굴엔 꿀처럼 생긴 액체와 과나코가 씹다만 풀떼기가 줄줄 흘러내립니다.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됩니다. 과나코가 결군에게 엄청난 양의 침을 뱉었다는 사실을요. 주위의 사람들도 놀라서 각자의 가방들을 뒤지더니 너도나도 물수건과 휴지를 건네줍니다. 눈만 깜빡이던 결군은 이제 사태 파악이 되나 봅니다. 


"끄앙!!!!!" 


단말마의 비명과 같은 울음이 빵 하고 터집니다. 당황한 저는 괜찮다고 과나코가 재채기한 거라고 위로해줍니다. 물수건으로 침을 스윽 닦아내는 데 고농도로 숙성된 풀떼기 아밀라아제 냄새가 코를 마비시킵니다. 너무 역합니다. 안 되겠다 싶어 결군을 둘러업고 화장실로 가서 30분 동안 세수를 했더랬죠. 그럼에도 그 강려크한 라마의 침 냄새는 달아날 줄 모르더군요. 과나코의 침 냄새, 저는 영원히 잊지 못할 듯합니다. 이런 냄새를 당사자인 결군이 잊을 리가 있나요. 사건 이후로 결군은 남미관을 지날 때마다 그럽니다.

"아빠, 과나코 있나 보고와"
"돌아가자, 아빠."


결군에게 과나코는 잊을 수 없는 녀석인 이유입니다. 그런 과나코를 스위스에서 보다니요. 그것도 해발 1000미터의 산골마을에서요. 아내와 저는 당연히 양을 보고 그러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스위스 빌트하우스

며칠이 지났습니다. 우리 가족의 숙소가 자리 잡고 있는 해발 1000미터의 빌트하우스 아랫동네에는 운터바써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으로 우리 가족은 산책을 나섭니다. 매일 산책 때마다 보는 풍경이지만 우리 가족이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건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에 걸린 방울을 딸랑거리며 풀을 뜯는 소들, 유연하게 펼쳐진 초원 위에 멋들어지게 솟은 바위산, 구름 한 점 없어 숨 막힐 듯한 푸르른 하늘을 매일 볼 수 있다는 사실에요.


그런데, 갑자기 며칠 전 그때와 같이 결군이 똑같이 외칩니다.


"아빠, 저기 과나코가 있어!!!"


결군이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어? 정말 과나코네? 저 친구 정말 과나코 맞는 거야?"


정말로 저기 과나코가 풀을 뜯고 있습니다. 동물원 해설사님이 남미에 산다고 말씀하셨던 그 과나코가 스위스 산골마을에서 풀을 뜯고 있어요. 울퉁불퉁한 산길에서 결군의 손을 잡고 후다닥 뛰어가 봅니다.


"정말 과나코인가?"


조금 다르게 생긴 것도 같습니다. 

"너 누구니?"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물어보려 했지만 이곳은 사람이 많지 않은 곳입니다. 한참 구경하다 창고 뒤로 가보니 이제야 이 녀석들이 누군지 알게 됩니다. 동물을 소개하는 커다란 간판이 무심하게 서있었거든요.




네, 이 녀석들은 '라마(Lama)'였습니다. '꽃보다 청춘 페루' 편에서 유희열이 사랑했던 그 라마! 이 녀석 덕분에 매일매일 결군과의 산책은 더욱 즐거워지게 됩니다.

"아빠, 얘도 침 뱉을까?"
"아마도 과나코 사촌 정도 된다고 하니깐 뱉겠지?"
"아빠, 너무 가까이 가지 마! 침 맞아!"


그런데 남미에서 사는 줄로만 알았던 라마가 왜 여기 있을까요? 스위스 알프스에서 라마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인터넷에서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뭐 어찌 되었든 스위스 토겐부르크(toggenburg)에선 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남미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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