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를 포함, 아래에 있던 모든 비용이 위로 향했다.
한달에 생활비가 얼마야?
매달 먹고 살만큼 급여가 들어오던 적이 있었다. 통장은 돈을 이리 들이고 저리 빼느라 항상 바삐 움직이곤 했다. 난 통장에 얼마가 들어오는지에만 관심이 있었지 얼마가 빠져나가는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빠져나가는 금액을 모두 합치면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하나하나를 보면 그리 크지는 않은 금액이라 생각했다. 실비보험료, 국민건강보험료, 주택담보대출이자, 유치원비, 세이브더칠드런...등등 매월 고정적으로 빠져나가고 있슴에도 그 금액이 정확히 얼마인지 난 알지 못했다.
생활비를 포함 나의 아래에 있던 모든 비용이 위로 향했다.
자발적 퇴사 후, 통장은 여전히 바삐 움직인다. 다른 점이라면 돈을 들이지는 않고 빼기만 한다는 것이다. 예전엔 실루엣처럼 흐릿하게 보이던 통장의 금액들이 하이라이트되어 눈에 띄이기도 한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고정비들이 눈덩이처럼 커다랗게 느껴진다. 보험료로 이만큼의 액수가 적당한지 의심해보기도 하고 위에서 아래로만 쳐다보곤 했던 주택담보대출이자율을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의 아래에 있던 모든것이 위로 향했다.
유치원비가 이렇게 비쌌나?
오늘 저녁에 학원에서 돌아오니 월 생활비를 정리하던 아내가 유치원비 이야기를 한다.
"유치원비 26만원이 이렇게 큰 금액인지 몰랐네. 이 금액만 빠져도 생활비부담은 확 줄겠다."
수입과 지출의 단순한 원리
사실 퇴사 전까지만해도 이 금액이 부담이 된다고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예전에 3년간 중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중국회사에서 근무하며 한국회사보다 두배의 연봉을 받았었다. 처음엔 열심히 모아서 빨리 주택담보대출을 갚아 진짜 우리집을 만들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두배의 수입은 두배의 지출을 불러왔고 결국 3년간의 저축액은 한국회사에서의 저축액과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줄었었다. 수입이 많으면 지출에 둔감해지고 수입이 적으면 지출에 민감해지는 단순한 원리인것이다.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 또한 아니다.
만약 내가 퇴사 후 더 좋은 직장으로 두배의 급여를 받고 있었다면 여전히 유치원비 26만원은 내 관심밖이었을 것이다. 유치원비가 두배인 52만원이었더라도 말이다. 삶의 초점이 돈의 액수에 맞추어진다면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을 조금은 알것도 같다.
적게 벌더라도 그 적은 돈을 밑에 깔고 어떤 행복을 누리느냐에 초점을 맞추어가며 살아야겠다.
p.s
어느날인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건넨적이 있었다.
"세이브 더 칠드런을 끊어야 하는 걸까?"
"우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지 말자. 말리의 그 아이를 생각하자.
이제 초등학교 거의 끝나가는데 갑자기 끊기면 어떡하라구.
이것만큼은 끝까지 가자."
사실, 내색은 안했었지만 난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퇴사 전 직원들은 모이기면 하면 온갖 불평들을 쏟아내며 그만두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서슬퍼렇게 통장을 바라보고 있는 무서운 아내때문이라고 했었다.
내 마누라, 내 아내가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