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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un 30. 2020

두부 멘탈

무식팔푼이인줄로만 알았던 이놈은 나보다 훨씬 현명하게 세상을 살고 있었다


내 친구 중에는 정말이지 놀라운 놈이 하나 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바닥에 머리를 대면 20초 만에 코를 골고 잠에 빠져드는 능력을 가진 놈.  예전에 낚시를 같이 가서 또 그렇게 잠에 빠져들길래 물어봤다.



"너 눕자마자 코를 고는데, 진짜 잠드는 거냐?"

"그럼 진짜 잠드는 거지, 가짜로 잠들어 코를 고냐, 색꺄~"

"넌 색꺄, 잠들기 전에 잡 생각도 안드냐?"

"잡생각 들지, 임마, 근데 3초만에 포기하고 자는거여"

"이 미췬쉑끼, 뻥치네, 니가 로봇이냐?"

"잡생각 해봐야 뭐해 새꺄,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거 한개도 없더만, 닥치지도 않은 거 갖고 지랄 맞게 머릿속에서 굴려봐야 돌 굴러가는 소리밖에 더 나냐?"

너무 어이가 없어, 30초간 정적이 흐른 후, 

"어, 이쉐끼봐라, 너 약 먹었냐? 어찌 이런 말을 다 하지?"

"....크허헉....드르렁~ 드르렁~"



이 놈은 그 새 잠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 놈은 큰일들을 분명 치르고 있고 적지 않게 치른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큰일에 대해서 이야기는 해주었지만 한숨을 쉬며 신세 한탄하며 앞날의 두려움을 토로하지 않았었다. 맞다. 그랬었다. 내가 벌어지지도 않은 일들로 인해 받고 있는 스트레스에 대해 배설할 때면 태연하게 "왜 벌써 걱정하고 지랄이야!" 이랬었다. 일이 벌어지고 해결되지 않은 채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그렇게 또 해결되지 않은 채 무언가 벌어지며 나의 머리카락은 힘을 잃어가고 급기야 원형탈모가 진행될 때에도 이 놈의 머리카락은 무슨 철수세미처럼 시커멓게 또 질기게 붙어있었다. 낚시가 끝나고 잠에 들며 장난치다 서로 머리 끄덩이를 잡아도 내 머리카락만 쑥쑥 뽑힐 뿐 이놈의 머리카락 한 가닥도 뽑히지 않았다.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무식 팔푼이었던 하나밖에 남지 않은 친구인 이 놈은 나보다 훨씬 현명하게 세상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걱정거리가 있으면 머릿속 노트의 맨 윗줄부터 한 줄 한 줄 아래로 써 내려가며 적어놓고 한 줄 한 줄 짝대기 그어가며 골머리 썩이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하나밖에 남지 않은 친구가 울림이 큰 경종을 살살 두드려주고 있는 것이다. 



"야 쉑끼야, 부럽다. 깊게 뿌리 박혀 쉬이 뽑히지 않는 세상을 대하는 너의 멘탈이 부럽다. 아....나의 두부멘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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