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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Aug 10. 2020

난 단지 손을 뻗어 잡으면 된다

어렵지 않다

비야 이제 그만 좀 와 줄래?? 이 날을 돌려도!


지난 주말, 장모님과 처형이 고기를 잔뜩 사가지고 머나먼 #양평으로 놀러 오셨다.  형님의 손끝에 매달린 까만 봉지가 고기의 무게에 팽팽하게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꽤나 많은 양의 고기를 사 오신 것 같았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으니 얼른 불을 지피고 구워 먹어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준비해놓은 숯불을 지피면 얼마 후 까만 숯의 겉면이 하얗게 변하고 새빨간 알불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움직이던 불씨처럼 귀엽게 이글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벌집삼겹살, 목살, 갈매기살을 숯불의 가장자리에 죽 두른 후 뚜껑을 덮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의 기름이 한 방울 한 방울 숯불 주위로 떨어질 것이고. 기름에 힘입은 숯불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더욱 세게 타오를 것이다. 굳게 닫힌 웨버의 뚜껑에 갇힌 숯 향 가득한 뜨거운 연기는 고기를 서서히 익혀간다. 훈연으로 구운 고기를 한 점 집고 초장을 살짝 찍어 먹는 상상을 하니 침이 절로 고인다.


이제 막 숯불을 지피고 있는데 맛있는 상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치이익~'

달구어진 뚜껑에 갑작스레 떨어진 빗방울 증발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치이익~' '치이익~' 

드럼의 심벌 소리처럼 점점 빨라진다.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장소는 마당 잔디에서 어닝이 펼쳐진 데크로 바뀌었다. 옷은 이미 젖었고 잘 달궈진 숯불을 보호하기 위해 형님과 나는 안간힘을 쓰며 고기를 굽는다.  잠시 후 하늘이 구멍이 뚫렸다는 표현도 모자랄 만큼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거세게 내리는 비는 바람에 날려 데크로 날아들었지만

장모님도 처형도 조카도 아들도 아내도 그리고 나도 모두 신이 난다. 형님은 웨버를 사수하며 고기를 열심히 구웠고 널찍한 쟁반 위로 훈연이 잘 된 고기들을 휙휙 날라주신다. 화이트 노이즈는 정신건강에 좋다 했던가, 빗소리와 함게 훈연이 잘 된 숯불구이는 환상적이었다. 지난달, 맘 고생이 심했던 처형은 오랜만에 힐링이라며 좋아했다. 장모님은 언제나 그렇듯 아이처럼 즐거워하셨고 결군은 가족이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신이 났다. 


 누구에게나 그 가족만의 분위기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조용한 분위기의 집안이 있는가 하면, 큰일은 물론 작은 일까지도 털어놓으며 서로의 감정을 애써 감추지 않는 떠들썩한 집안이 있다. 내가 자란 가족 분위기가 전자라면, 아내의 집안 분위기는 후자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람을 편하게 한다.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엄마 집보다 장모님 집이 편할 때가 많다. 어떤 때는 장모님 집이 너무 편해서 오래된 친구의 자취방에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아내가 이처럼 건강한 마음씨를 가진 여자로 성장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쉽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 아내를 자주 안아주고 자주 표현하며 키워준 장모님에게 감사하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오늘도 아내가 새로 만들어 놓은 화단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내일도 그러하겠지.  행복은 언제나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머물고 있다. 난 단지 손을 뻗어 잡으면 된다.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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