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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Dec 31. 2020

엄마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거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는 모습은 아이의 눈에도 보인다

목이 붓더니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 벌써 일주일째다.


일주일 전, 아내는 독감인것 같다며 병원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코로나 검사를 하루빨리 받고와야 한다고 했다. 열이 있으면 병원은 환자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양평군은 선별검사소를 설치하며 무료로 검사를 해주고 있어 잠깐 다녀오면 그만이었다. 결군에게 코로나 검사를 받도록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귀찮았다. 머뭇머뭇하다 뒤늦게  선별검사소에 전화를 걸어 지금 가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오늘 검사는 끝났습니다"


 이 날밤 결군은 밤새 39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다. 하룻밤새 입술 전체가 헐고 잇몸이 부었으며 입안전체에 심한 구내염이 퍼졌다. 귀찮음에 하루를 미루었던 나에게 쏟아지는 아내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할 수 없게되었다. '귀찮을 것도 따로있지. 쯧쯧....' 한심한 아빠다.


 다음날 오전, 채비를 갖추고 코로나 선별검사소로 향했다. 


"아아악!~"


 접수처 앞에서 건너편 천막에서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비명소리는 결군의 머릿발을 바짝 서게 만들었다. 흔들리는 동공의 결군이 말했다.


"아빠, 나 콧속에 쑥 들어오는 거 싫은데..정말 싫은데.."

"아프진 않고 좀 불편하긴 해..."


 올해 초, 회사에서 나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었던 직원이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코로나 검사를 받은적이 있었다. 사실 난 그 때 불편함을 넘어 좀 아프기도 했었다. 검사 후 결군이 느낄 배신감(?)을 생각하니 사실대로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긴 하지...콧속, 목구멍속 깊숙이 들어와 쑤셔대니깐..하지만 잠깐이야...잠깐만 참으면되"


검사결과는 다음날 오전에 문자로 전달된다고 했다. 이 날도 결군은 고열에 밤잠을 설쳤다. 입술과 구내염은 더 심해져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삼시세끼 죽만 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펄펄 끓는 결군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죄책감에 휩싸인채로 나는 내일 오전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는거 외엔 할수있는게 없었다. 어디선가 발사되는 강렬한 레이져빔에 나의 뒷통수가 따가웠다. 아내의 눈빛은 마블히어로의 그  눈빛이었다.


 다음날 오전, 결군과 나는 옷을 챙겨입은 채로 휴대폰 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2.5단계로 상향되고 나서 결군은 동네친구들과도 놀지 않았으며 나는 외출을 하지 않았다. 뭐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코로나에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예상대로 음성이었다.




검사결과를 들고 병원으로 급하게 악셀을 밟았다. 고열이 있지만 코로나는 아니라는 검사결과를 건네주고 진료를 받았다.


"편도 농양입니다. 심한편이네요. 힘들었겠어요"


'심하네요~ 하네요~ 네요~' 

'힘들었겠어요~ 들었겠어요~ 어요~'


심하고 힘들었겠다는 말이 메아리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꽃혔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다.


"아싸, 독감 아니다!"


결군은 코를 쑤시는 독감검사를 받지 않아서 좋단다. 여전히 매우 해맑고 단순한 결군. 잠시나마 죄책감을 덜어내고 미소를 머금어본다. 하지만 편도농양은 독감 못지않은 고열에 면역력을 저하시켜 입술 헤르페스와 구내염이라는 2차 질환을 유발시켰다.



5일 동안 항생제와 기타 약을 복용하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편도농양은 많이 좋아졌지만 2차질환인 구내염과 입술염증은 회복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결군과 손잡고 병원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결군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빠,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클날뻔했다 그치?"

"나 하루종일 집에 있고 방학에도 혼자있어야 하는데, 엄마도 일하고 아빠도 일하면 어떻게 해?"

"...으...응....그렇지..."

"만약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은상태에서...둘중에 누군가 그만두어야했다면 아빠는 안 그만두었을거 같아..."

"그래서 아빠가 미리 그만두어서 좋아.."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맨날 집에 있는데...아빠 엄마 둘다 일할순 없잖아"

"누군가 그만두어야 하는데...아빠는 맨날 야근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지만...엄마는 좋아하는 일 하는 거니깐..."

"그리고 아빠가 나랑 같이 집에 있는게 너무 좋아..."


가슴이 뜨거워진다. 결군에게 회사에서 야근하고 맨날 늦게 들어오는 아빠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나보다. 결군이 알아들을지는 몰랐지만 이렇게 말했다.


"뭐...사실...좋아하는 직장은 아니었지...직업자체는 좋아하지만..."


아이의 눈에도 엄마는 '엄마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 처럼 보였나보다. 아내가 직장이라는 곳을 좋아하는 지는 의문이지만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거든...


이 모습이 아이의 눈에도 보이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결이고운가의 유튜브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lSYdHYXqST8phtUVGZrA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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