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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an 05. 2021

쓸모없는 것들의 관성

회사를 그만두고 지갑에 남아있던 쓸모없는 것들을 버리고나니 너덜너덜하다

면사무소에서 문자가 날라왔다.



"신청하신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으니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작은 카드지갑에 자리하고 있던 운전면허증이 사라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러 명함들, 신용카드, 사원증 등등 (쓸데없는 것들이 꽉 차 있었다) 모두 쏙 빼고나니 예전의 빡빡하게 채워져있던 쓸모없는 것들의 관성이 남아있어 지갑은 헐렁헐렁 아니 너덜너덜할 정도로 텅 비었다. 명함들은 모두 버리고 내 명의의 신용카드는 책상서랍에 넣어두었다. 그 자리에는 아내의 신용카드가 들어왔다. 장볼때 아내의 신용카드가 필요하다. 나의 건강보험은 아내에게 귀속되었고 연말정산도 아내의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갑이 너무 헐겁다 싶었다. 아니다 다를까 맞지 않는 틈새에 끼어있던 운전면허증이 어디에선가 빠져버린것이다. 주민등록증은 한참 전에 잃어버려 운전면허증으로 신분증을 대신하여 사용중이었는데 말이다. 온라인 줌 수업 중인 결군에게 아침으로 토스트에 반숙계란을 한장 올려주고 나서 면사무소로 향했다.



"찌영, 혼인관계증명서 뽑을려면 본인지문인식이 필요한데?"



면사무소 내 증명서 자동발급기 앞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주민증 찾으러 가면서 아내가 부탁한 혼인관계증명서를 뽑으려는데 문제가 생겨서였다.



"창구에서 위임장쓰고 신청하면 되잖어"



하나가 떠오르면 두번째는 무시해버리는 나 이다. 면사무소로 가는 차안에서 '증명서는 자동발급기로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가는 내내 '자동발급기'라는 단어가 나의 머리를 지배했다.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던 자동발급기가 지문인식을 요구하자 대안이고 뭐고 떠올리지 못한채로 아내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전화를 받은 아내는 한숨을 쉬며 창구에서 신청하라고 말해줬다.



'결군 점심은 뭘 해주지?'



집으로 가는 길에 시계를 보니 점심먹을 시간이다. 삼시세끼 아들 밥 챙겨주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회사 다닐 적, 아내는 겨울 방학이 시작될 무렵이면 두려움섞인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했다. 시골초등학교의 방학은 도시의 방학보다 길다. 긴 한숨쉬는 아내를 이해못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을꼬. 가는 길에 하나로마트에 차를 세웠다. 장 볼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하나로마트는 정말 비싸다. 다 비싸다. 농산물도 공산품도 빵도 과자도 우유도 다 비싸다. 최소한 양평에서 생산된 지역쌀정도는 다른곳보다 싸야되는거 아님? 라면이 떨어져서 삼양라면 5+1 과 고메스테이크 한 봉지를 집었다. 떡만두국을 해줄까하다가 간만에 칼질좀 해야겠다 싶었다.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라면 봉다리를 들고 집으로 올라가는데 옆집 아저씨와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했다. 평일 날 라면봉다리 들고 집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을, 이 아저씨는 어찌 생각할까 라는 잡생각이 짧게 스쳐갔다.


 고메스테이크는 전자렌지로만 돌려먹는 방법, 전자렌지로 데우고 후라이팬으로 구워먹는 방법, 두가지가 있다. 결군에게 겉바속촉의 스테이크를 먹이기 위해 후자를 택했다. 소스를 데우고 스테이크를 데워 후라이펜에 올렸다. 그 옆에는 계란 두알을 이쁘게 떨어뜨렸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얘기 주먹만한 스테이크를 그릇에 올리고 따뜻한 밥을 옆에 깔았다. 반숙으로 익힌 계란 한알은 스테이크 위에 나머지 한알은 김이 모락모락나는 밥위에 올렸다. 화룡정점으로 스테이크 소스를 고풍스럽게 솨라락~ 뿌렸다.



"우~~~아! 아빠 이건 예술이야, 너무 맛있어보여, 이건 그냥 먹으면 안되지! 사진 찍어야지!"



면사무소 앞 하나로 마트에서 산 냉동 스테이크를 전자렌지로 2분돌려 만들어준 음식에 이토록 오버를 떨어준다. 아주 이뻐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없다. 이러니 엄마 아빠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지.


 엊그제 밤에는 양치하고 자기위해 침대에 누운 결군이 말했다.



"엄마 아빠는 세상을 만든 신이에요"

"왜???"

"엄마 아빠가 나를 태어나게 해줘서 내 세상이 만들어졌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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