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2020.4.6
코로나로 갑자기 백수가 된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일주일만 휴원 하면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2주 뒤에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게 되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할 수 없는 학원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웃사촌 옆 미술학원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선생님,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 나는 더 이상 안 되겠어. 다음 주부터 수업하려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장 수입이 제로인 건 당연하고 일하지 않아도 월세는 꼬박꼬박 내야 했다. 고민 끝에 수업을 시작하겠으니 참여 여부 의사를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예상대로 몇 안 되는 아이들만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사회적 거리 유지를 위해 시간을 정해놓고 한 명씩 오라고 해야 하니 일의 효율도 떨어진다. “이런 상황인데 꼭 해야 하나” 하는 물음이 바로 따라왔다.
교육청에서는 마스크, 손 세정제, 학생 출석 시 열 체크 및 시간 체크 문서화, 사회적 거리 유지, 등등 수많은 요구 사항들을 조목조목 나열하며 위반 시 벌금, 확진자가 생길 시 구상권 청구를 하겠노라며 강력히 제재했다. 제재 조치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마치 우리가 무슨 큰 죄를 진듯한 뉘앙스를 강하게 비추니 말이다.
주변에서는 ‘고작 몇 명뿐인데 뭐하러 시작하느냐, 그냥 있는 게 손해가 덜 하겠다.’ 등등 나를 걱정해 주는 말로 가득했다.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 도 있지만 오겠다고 하는 그 몇몇도 생각해야 한다. 오고 안 오고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내가 열지 않으면 그 선택권마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큰 공원을 끼고 있는 이 동네는 봄이면 푸릇한 나무들과 갖가지 꽃들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매일 지나칠 때는 이곳이 이렇게 예쁜 줄 몰랐다. 오랜만에 간 동네는 언제나 그렇듯 봄의 화려함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은 유혹하는 봄 내음을 참지 못하고 다들 밖으로 뛰쳐나온 듯했다. 20년을 한결같이 지나쳐 온 곳인데 너무도 낯설었다. 마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나 홀로 살아가야 할 것 같은 막막함이 밀려왔다.
방역 업체를 불러 소독을 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구비 해 놓고, 수업 준비는 끝났다. 이제 오기로 한 아이들을 만날 차례다. 못 본 사이에 얼마나 들 컸을까? 내가 보고 싶었을까? 무슨 말로 시작할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만났다. 잘 있었냐는 인사로 아이들을 안아 주었다. 여전한 아이들은 이내 쉴 새 없이 조잘댄다.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던 답답함이 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다. 내가 쉽게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이 아이들 때문인 것 같다.
아이들 가르치는 게 좋아서 선택한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현실의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아이들과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020. 8. 31
모두 돌아오지 못한 채 몇몇의 아이들과 다시 만나서 일상을 이어 나갔다.
점점 확진자가 줄어드는 듯해서 2학기가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을 가졌다.
8월 16일 다시 확진자가 늘기 시작했다. 연일 나오는 기사에 민감 해 질 수밖에 없다.
혹시 이번에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사업장 폐쇄에 들어간 어느 PC방 사장님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에도 쫓기듯 들어가는 바람에 많이 힘들었는데 이번에 또 폐쇄가 되니 정말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해 본다고 하셨다.
지금 내가 그렇다. 과연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날까지 버틸 수 있을까?
8월 31일 오늘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시행. 휴원 권고 명령에 앞으로 일주일간 휴강이다.
정말 일주일이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