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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바비앙 Jan 11. 2021

다시는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다시 시작

코로나로 갑자기 혹독한 시베리아 벌판으로 내던져진 나는 집에 있는 두어 달 동안 가슴속에 돌덩이를 안고 지내야 했다. 식구들은 그동안 열심히 일 했으니 이 기회에 좀 쉬라고 했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 올 리가 없다.

시장의 흐름상 이제 교체가 필요하겠다고 느끼고 있었던 찰나에 코로나를 만났으니, 코로나 때문이라고 적당히 둘러대고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 하자며 나를 달랬다.

소용이 없다. 내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닌지 불안함으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차라리 한 달이면 한 달, 기간이 주어졌더라면 마음이 좀 편했을까? 2주, 또 2주.. 찔끔찔끔 연장되는 소식은 그야말로 피를 말렸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말처럼 식구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했지만 나의 불안은 점점 더 해져 갔다. 정신과에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하나 싶을 정도로 속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글쓰기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다. 다른 홍보 문구들 중에서도 유독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글쓰기로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고 싶으신 분'


정신병원에 가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시작한

글쓰기였다.






" OO아~ 넌 좋겠다. 너희 아빠가 국어 선생님이니까 넌 글 잘 쓰지?"

중학교 시절,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었다.  아빠는 우리 학교 국어 선생님이다. 게다가  교내 문집 편집반을 맡고 계셨다. 그러니 글쓰기 시간이 되면  의례 것 듣게 되는 말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아빠가 글 쓴 적을 본 적이 없다. 잘 쓰시는지 못쓰시는지도 모른다. 국어 선생님 자식이면 글 잘 쓴다는 공식이 세상에 어디 있던가?


 '글'이라고 해 봤자 학창 시절 겨우 겨우 써낸 독후감, 언제부터 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적은 그날그날의 소소한 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난 후 그저 기록용으로 작성한 블로그 글... 이것이 내 글 쓰기의 전부였다.



A4 용지 한 장. 글자 크기 10포인트. 줄 바꿈 없이 꽉 채우기, 21 동안 매일 한 장씩!!

주제도 없다.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써라.


무인도에 혼자 떨궈놓고 가버린 느낌이랄까? 작가님이 던져주고 가신 숙제 앞에서 망연자실하는 것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 마이 갓! 미쳤다. 그냥 환불해 달라고 할까?"


밤새 컴퓨터의 빈 화면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도대체 여기에다 무엇을 적어야 하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미쳤다는 말만 내뱉으며, 이걸 뭣하러 신청했나 싶은 게 후회가 밀려왔다.

글 쓰기로 치유가 된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치유란 말 인가? 시작부터 고통이거늘....

완전히 망했다. 글쓰기가 치유가 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10년의 세월은 바깥일, 가사, 육아 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 지금에 와서 보니 나는 없고 나의 역할과 책임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사춘기도 소리 없이 지나간 터라 내면 깊숙한 곳의 나와 마주하며  진정한 대화를 해 볼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 기회에 나의 지난날을 곱씹어 보기로 했다.


어찌 된 일 인지 자꾸 눈물이 난다. 슬픈 기억은 정말 슬퍼서 눈물이 났다고 해도, 즐거웠던 기억에서 조차도 눈물이 나는 건 왜 일까?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서? 현재의 내 신세가 처량 맞아 보여서? 알 수가 없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글 쓰는 내내 울었다.

중간에 작가님과의 통화의 기회가 주어졌다.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는데 주책맞게 또 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읆어대면서 나를 슬픔의 바다로 몰아넣었다.


눈물로 지새우며 보낸 날이 한 달여, 처음엔 없었던 내용인데 내가 쓴 글을 소책자로 내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나의 미니 자서전이 생기는 건지, 잘 다듬어진 인생 일기장이 채워지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냥 컴퓨터 속 파일로 남겨져 있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졌다.


글을 다 썼으니 이제 울 일도 없다고 생각을 했다. 책 내는 과정에서 그렇게 울 줄 또 누가 알았겠는가?

자가 출판 시스템의 벽 앞에서 어찌할 줄 몰라 쩔쩔 메고 있었다.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 종이 한 장 채우는 게 전부인 컴퓨터 실력. 다른 사람들은  본인의 사진도 커버로 예쁘게 넣고  하던데, 지독하게 컴맹인 나는 언감생심이다. 그냥 폼에 주어진 것을 끌어다 쓰는 것 많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같이 글 쓰는 동기 중에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언니가 있었다. 언니 역시 책 만들기 작업에서 헤매면서 우리 둘은 또 그렇게 울어댔다. 동기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끝낼 수 있었던 악몽의 작업 시간이었다.. 이런 것도 하나 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의 눈물이었다.


우여곡절 속에 완성된 내 책이 손에 들어왔다. 기념에 남겨야 한다며 예쁘게 사진을 찍었다.

분명히 이것 때문에 엄청나게 울고, 종당 간에는 멍청하다고 비하까지 하면서 괴로운 시간이 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속이 후련하다. 상황이 바뀐 것도 없이 여전히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분명 나는 한 달 전에 나와 달라져 있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울고만 있던 내가 그동안 많은 상황들 때문에 그냥 지나쳤던 것들을 하나씩  해 보고자 마음먹었다.  곧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는데 솟아날 구멍을 찾게 된 것 같았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작가님과 마지막 통화를 했다.

"속이 시원하시죠? "

"네, 일단 다 끝내서 시원하고, 어찌 된 게 마지막까지 그렇게 울었는데 지금은 그냥 후련하네요."

"지난번 전화할 때랑 목소리가 달라지셨어요. 아마 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 아니요!!! 절대로! 다시는 글 쓸 일 없을 거예요. 더는 못써요. 쓰고 싶은 말 다 썼었어요."


다시는 글 쓸 일이 없을 거라던 나는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도 달고 글을 쓰고 있다.

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사적인 일기를 쓰고 있지만 나의 글쓰기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이 아니다.

내 맘대로, 쓰고 싶은 대로 쓰는 치유의 글 쓰기이다.

치유 글쓰기의 목적은 글로 마음껏 표현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나는 정확하게 그 의미대로 행하고 있는 중 인 것이다.


"글 쓰기로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고 싶으신 분"

이 말은 진실이었다.



글을 써 보겠다고 처음으로 마음먹게 해 주신 미소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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