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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바비앙 Jul 06. 2020

늘 갈등 중인 전업맘과 워킹맘 사이

고민

 결혼 전에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한다니까 다들 하는 말이 우아한 직업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알 것이다. 내 자식 남의 자식 할 것 없이 애들은 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을... 하루 종일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입씨름을 하고 나면 기가 쪽쪽 빨렸다.


집에 가서 푹 쉬면 좋겠지만 자유로운 영혼 하나가 더 남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내 자식이라고 1분이라도 빨리 가서 보고 싶었고, 자기 전까지 책도 읽어 주고, 부비부비 껴안아 주고 싶었기에 끝나자마자 빛의 속도로 달려갔다. 남들은 9시면 재운다는데 우리는 그때야 집에 오니 다시 시작인 셈이었다. 그래도 유치원에 다닐 때는 다음날 등원 시간에 여유가 있고, 엄마의 출근이 늦으니 조금 늦게 자도 상관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와 함께 책 보고, 그림 그리고, 여유 있게 밥도 먹고... 일부러 등원 시간 제일 마직막에 문 닫고 들어가게 했다. 내가 함께 해 줄 수 있는 그 시간뿐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엄마들처럼 하원 때 데리러 가고, 오는 길에 손잡고 아이스트림 가게에 들른다던지, 놀이터에 간다든지, 우리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 모습이 늘 부러웠다. 

한 번은 수업시간이 되기 전 저 멀리서 엄마랑 손 붙잡고 오는 어떤 아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너는 좋겠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할머니 손잡고 집에 갔을 아이의

모습이 오묘하게 교차되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놀이도, 학습도 다 내게 함께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나는 그런 것을 하나도 해 주지 못한 채 아이의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학교에 가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일찍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해야 하니 오전에 함께 보낼 시간이 눈에 띄게 줄게 되는 것이다. 또 학년이 올라가니 학업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봐주지 못하면 학원이라도 보내는데 학원이라는 곳이 보내기만 한다고 다 잘하는 게 아닌 것을 잘 알기에 쉽사리 보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 아이는 행동도 느리고, 누군가 재촉하면 더더욱 불안해서 못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학원을 보내는 것도 꺼려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야무지게 엄마표를 결심하고 열심히 아이를 잡기 시작했다. 학교 갔다 오면 책 읽기, 영어 DVD 보고, 영어책 몇 권에 수학 문제집 몇 장.

이런 식으로 정해주고 아이손에 체크 표를 쥐어주었다. 그러나 엄마도 없이 혼자서 할 일을 한다는 것이 아직은 어려운 어린아이였기에 안 해 놓고 진탕 노는 날이 많았다. 퇴근하고 오면 폭 안아 주고 그날 있었던 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점점 사라지고, 대신 “오늘 한 거 가지고 와 봐”라는 말이 먼저 나오기 시작했다.  

   

 읽었던 육아서의 좋은 말들을 기억해 두고 실천하려고 했던 내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이가 그날 해 놓을 과제를 안 해 두었으면 온갖 모진 소리를 해 가며 야단을 쳤다. 눈물 바람을 하고 자는 아이를 쳐다보며 ‘내가 미쳤지’를 외쳐보지만 이미 아이한테는 상처만 한 보따리를 안겨 주고 난 뒤였다. 이 모든 게 내가 집에 있지 않으면서 집에 있는 엄마처럼 하려고 욕심을 부려서 일어나는 일 같았다.  

    

아이도 저학년 때는 혼내는 엄마가 무서워 울기만 하더니 10살이 되고부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는 대신 입이 나온다던가, 발을 세차게 구르며 걷는다거나, 방문을 닫고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차 싶었다. 이러다가 본격적인 사춘기가 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마주 할 것만 같았다. 내가 원한 아이와의 관계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작년 중반쯤 위험의 신호를 감지하고 나서 나는 아이에게 원했던 숙제를 조금 내려놓고 자기 전 다시 어린 시절에 했던 것처럼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때로는 같이 읽기도 하고, 읽고 난 후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함께 잠을 청했다. 큰 소리 내던 엄마의 모습이 사라져서인지 아이도 다시 평온함을 찾은 듯했다. 얼마간 평화의 시간을 가진 뒤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좋겠어?”     

 

아이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으나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생이 되면 나가지 않겠다던 엄마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니 포기했는데 그래도 한 번 더 자기의 의사를 내비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정말 있어 줘야 하는 시기에 있어 주지 않았으면서 뒤늦게 들어와서는 자신을 간섭한다고 생각할까 봐 겁이 나기도 한다. 

     

엄마로서 역할과 가치보다 자아 발전을 위한 마음이 더 큰 엄마라면 아이한테 크게 미안하지 않을까? 너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당당한 어른으로 크길 바란다면 엄마가 일하는 것을 이해해 줘야 한다고 아이를 설득시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이유가 자아 발전보다는 좀 더 나은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늘 전업맘과 워킹맘 사이에서 갈등 중이다. ‘둘 다 다 가지려는 것은 욕심일 테지?’ 어떤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답도 나오지 않는 이것을 오늘도 나는 또 내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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