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길 500km 횡단종주 걷기명상
5. 무화無化
- 어머님, 어제는 힘겹게 길을 걷는 동안 중국에서는 중-러-북 삼국의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중국 전승절 80주년행사가 거국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어떻게 보셨는지요.
= 인간의 세상은 끊임없는 작용과 반작용의 연속이잖니. 한국의 국가수반이 지난달 일-미-한의 연결대오를 잇는 국가정상회담을 가졌으니, 그 정반대의 모양으로 러-중-북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 하겠구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행사에 일찌감치 초대되었으나 국익과 여론을 감안하여 미-일 방문으로 결정하였으므로, 예상한 바와 같이 냉전이후 다시 공산주의 전제국가 3국 대 자유진영 민주국가 3국의 대치국면으로 힘겹게 가야할 길을 (회피하지 못하고) 가는 것으로 역사는 전개될 것이다. 그것은 겪을 것은 겪고 넘어가게 되어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 어머님 살아생전에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그 마음으로 연결된 세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전쟁과 또 이스라엘과 이란간의 전쟁이 간신히 최악의 상황에서 다소간 진정된 국면으로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무엇보다 우리나라 또한 자칫 커다란 정치적 퇴행의 방향에서 힘겹게 비껴가고 있어 보입니다. 허나 아직 중국의 경제력 부상과 대만침공을 빌미로 한 미중 패권전쟁의 기미와 함께, 그 대치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존재하는 한반도에서의 남북간의 간극과 대립은 수그러들기는커녕 이번 중국 전승절행사로 더욱 강대강의 극단적인 대결구도로 치달아가고 있는 모습니다. 이런 상황아래 일개 범부이자 세상에서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제가 감히 이런 일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감당하며 또 헤쳐나갈 수 있는지 앞이 감감해져 옵니다.
= 벌써 잊었느냐. 나는 그 무엇이라도 되어서 러-우전쟁과 이-이전쟁 그리고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또 미래를 열수 있는 단초를 만들 수 있었겠느냐. 내가 목숨을 다해 대비한 너의 공부와 더불어, 작년부터 올해까지 연이어 터지기 시작한 극단적인 대치와 전쟁구도의 암울한 세계정세와 대한민국의 기울어지는 형국을 멈추고 되돌려 그 방향을 변경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거기에‘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늘과, 더 깊고 넓은 우주와 하나 됨으로써 오직 그 하늘과 우주의 뜻과 사랑으로만 나의 생각과 마음을 오롯이 하나로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내가 병상에서 눈꺼풀하나 움직일 수 없는, 나에게 주어진 생이 다해가고 있었기에 오히려 한치의 의심과 주저함없이 그리할 수 있었다고도 하겠다. 내가 인간으로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바로 그 때문에 거꾸로 나는 인간의 제한을 뛰어넘어 이전의 무엇이라고 하는 인간으로서의 내가 아닌 진정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나의 존재이유는 오직 지구별의 모든 폭력과 전쟁과 미움과 분노가 그와 같이 아무 것도 아닌 상태로 되돌아가길 바라는 염원 하나로만 모아질 수 있었고, 나아가 그 염원조차 이내 내안과 내밖 모두에서 사라지고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내려놓고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이해가 되겠느냐.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기로 결정하고 선택한 이상, 그 몸을 통해 지구별의 역사만큼 긴 시간동안 축적되어온 수많은 경험들이 정보로 몸속에 새겨져 끊임없이 유전되어 내려 온 그 반복과 축적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것은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의, 그 아버지의,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 그 처음에서부터 다시 끝없는 이어짐으로 내려오는 모든 순간의 끝자락인 지금 현재의 결정체로서, ‘우리’와 그 안의 저마다인 ‘나’들이 몸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용량의 기억의 정보들이 새겨져, 지구별에 인간으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의 전체로서의‘우리’와 개별구성원으로서의‘나’는 그 몸(들) 스스로가 일종의 자기의식을 가지는 것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몸의 자기의식이 ‘우리’와 저마다의 ‘나’를 지키고, 보호하고, 편하게 하고, 드러나 보이게 하기 위한 갖가지 유혹의 방식으로 지금껏 온갖 편리한 방법을 동원해 지구별의 제한을 벗어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몸의 자기의식이‘우리’와 ‘나’를 그 마음대로 결정하고 이끄는 힘을 부려온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와 저마다의 ‘나’를 강제하며 그것에 맞추어 움직이게 하는 힘이었으므로, ‘우리’와 저마다의 ‘나’가 진정 주관하고 행사하는 아닌 것이다. 몸의 자기의식을 통해 ‘우리’와 저마다의 ‘나’를 그런 힘의 모양새로 끝없이 몰아 부쳐왔고, 또한 그 관성으로 그 힘이 영속될 수 있도록 몸의 자기의식은 스스로를 거듭 고집스럽게 주장하며 더욱 ‘우리’와 저마다의 ‘나’가 진정으로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상태에서 멀어지도록 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우리들의 조상들의 시간의 반복과 축적의 역사 위 정점에서 존재하는 ‘나’라는 최극강의 자기의식이기에, 이렇듯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어리석은 에고의 모습으로 ‘우리’와 저마다의 ‘나’들로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우리’와 저마다의‘나’의 그런 특징으로 인해, 주위 이웃과 넓은 세상과 저 너머의 광대한 우주와 함께 할 수 있는 조화와 균형과 공존의 성질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성질로 인해, 몸에 갇힌 ‘우리’와 저마다의 ‘나’는 영원히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 만큼에 비례한 생과 사의 두려움에 갇힌 힘이자 에너지 덩어리 그 자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욕망과 두려움의 정보와 힘으로 가득 찬 몸이기에 그로 인해 ‘우리’ 모두의 ‘나’들은 천지사방으로 거칠게 뜀박질하는 분주한 감정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 요동치는 감정들은 다시 붉게 치솟아 온 갖가지 삐뚤어지고 사악한 생각들을 만들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몸의 힘이 추동하는 방향으로만 치우쳐, ‘너’는 사라지고 오로지 ‘나’와 함께 ‘나’들의 총합인 ‘우리’로만 존재하고 또 드러내려는 감정과 생각들을 자아내게 된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갈등과 분쟁과 폭력과 전쟁과 미움과 분노는 그런 연유에 기인한 것이다. 수없는 시간에 축적된 엄청난 힘으로 분출된 ‘나만’‘우리만’ 이라는 정보들의 당연한 귀결이며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의 지구별의 힘겨움을 다스리고 정화해서 길을 잃은 그 몸들의 자기의식인 힘을 순일하게 가라앉히는 길이 무엇이겠느냐. 또 다른 ‘나’의 더욱 특출나고 강한 몸과 감정과 생각으로 그것을 제압하고 정복하고 지배해서 모두 없앨 수 있겠느냐. 그 새 것조차 어긋난 한 방향으로 치닫는 굴레에 갇힌 것이기에 그것의 힘과 에너지는 이전과 다름없이 악화일로로 향하는 힘과 에너지를 더욱 강화시킬 뿐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현 상태의 지금을 만들어온 모든 시간의 정보와 그 안에 담긴 힘과 에너지를 되돌리고 정화하는 무화無化의 방법은 무엇이겠느냐. 오직 한 가지, 그 수많은 ‘나’중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나’를 지어내어 시작하는 것 말고 무엇이 있겠느냐. 지금껏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세상의 거의 모든 ‘나’들은 시도해볼 엄두도 내보지 못한 일을 꿈꾸는 새로운‘나’말고 어떻게 가능하겠느냐.
새로운 ‘나’는 ‘나’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으로건 딱딱하게 굳어져 고집스럽게 존재하는 ‘나’가 아닌 다른 ‘나’여야 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정보와 힘과 에너지의 새로운 ‘나’로 세상에 내어 놓는 것이다. 동시에 그 내어놓음을 시도한 ‘나’조차 주저없이 버리는 ‘나’인 것이다. 결코 어떤 ‘의도’와 ‘계획’과 ‘목적’도 가지지 않는 ‘나’로만 그냥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만, 그 길로만 가능한 것이다.
욕망과 두려움에 갈팡질팡하며 떨고 있는 오랜 틀 속에 갇힌 인간인 나의 아들아, 너에게 주어진 소임은 지금의 너라는 자기의식으로는 결코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 길은 오직 네가 지금의 너인 상태를 뛰어넘어 벗어나고 버릴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아무것도 고집하지 않고, 아무것도 지키려하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려하지 않는, 그렇게 도무지 아무것도 아닌 너여야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너에게 주어진 그 어떤 소임도 결코 네가 하는 것이 아닌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주의 별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별들의 뒷자락에서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아득한 어둠뿐인 것처럼, 세상에 가장 빛나는 새 별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가장 깊은 어둠인 것이다. 주인공인 별이 아니라 배경인 어둠이어야 하는 것이다. 저마다의 ‘나’들과 마찬가지인 또 다른‘나’이어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더 큰 빛이 아닌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가 새 빛을 창조하는 길에만, 이전과는 다른 정보와 다른 힘과 다른 에너지가 새롭게 ‘우리’ 모두와 저마다의 ‘나’에게 새로 깃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짧고 또 짧은지 어머님이 전하시는 말씀의 십분의 일 백분의 일도 담지 못함을 한탄스럽게 여길 뿐입니다. 하지만 제한된 말씀으로는 모두 담을 수 없는 그 뜻의 정수만은 온전히 받아, ‘나’라는 구인류의 미천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일조차 이제 감히 다르게 엄두를 내어 보는 새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아무것도 아닌 전혀 다른 너의 모습은, 밤하늘의 별들 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캄캄한 어둠처럼 늘 네 안에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란다. 다른 곳, 멀리 저밖에 있는 것이 아니란다. 언제나 네 안에 함께하고 있던, 그 아무것도 아닌 본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며 결코 사그라지지 않도록 한결같이 네 곁에서 지금껏 머물며 지켜온 것이란다. 동시에 그것이 바로 너를 감싸고 있는 지구별 전체의 모습 있는 그대로인 대자연의 모습이기도 한 것임을 이제는 더욱 확연히 알아야 한다. 대자연속에 머무는 그 무엇도 ‘나’를 주장하고 고집하지 않으므로, 대자연은 전혀 다른 너의 본래 모습을 비추며 너를 본래의 자리로 이끄는 거울이자 나침반으로 언제나 함께하고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저마다의 ‘나’들이 서로 부딪히고 격화되어 결국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피비린내 나던 곳이, 멈춤의 시간으로 이어져 지난 70여년을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숨죽여 지켜진 곳이 바로 그곳 DMZ인 것이다. 그곳에서 모든 ‘나’가 함께 머물 수 있는 공존의 평화를 품은 대자연으로 되살아 지켜져 온 곳이 바로 DMZ임을 알아야 한다. 네가 그곳을 걷고 그곳을 숨 쉬고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DMZ가 품고 있는 대자연속에서 우주의 캄캄한 배경인 어둠을 네 안에서 되찾아내길 바란 것이며, 그 침묵의 시공간에서 세상의 모든 ‘나’들의 아우성을 잠재우는 무화無化의 길을 발견하기를 바란 것이다.
- 네 어머님. 조금씩 선명해져 갑니다. 그간 자기의식의 굴레에 갇혀 분간없이 진흙탕 속에서 뒹구느라 가늠할 수 없었던, 내 몸의 아우성들과 요동치는 감정들과 끊임없이 흔들리는 생각들이 이제 조금 물끄러미 저만치 물러나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DMZ 평화의길이 담고 있는 대자연을 통해 이제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는 다른 ‘나’의 새 길을 발견하고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 아무것도 아닌 인간임에도 진정 아무것도 아닌 한 존재로 거듭남으로써 세상에 유일한 존재가 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세상사람 모두 안에 깊이 숨겨진 본래의 자리로 이어진 대자연이라는 연결점을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신인류의 삶들이, 구인류 인간의 왜소한 욕망과 두려움에 갇혀 스스로를 왜곡하고 차단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네 안에 이미 충만한 O계의 뜻과 사랑으로만 임하고 맞이해 나가도록 하거라. 너는 네가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느껴지는, 하지만 세상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지금까지의 발걸음처럼 너의 힘으로만 직접 하나씩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목숨을 다해 너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자 한 우주를 아우르는 진리의 법으로, 너의 한마음과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지구문명을 바꾸고 나아가 감히 우주조차 바꿀 수 있게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너’를 통해 수많은 새로운 ‘너’들로 지구의 인류문명은 다른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옹졸함과 조바심과 어리석음으로 주춤거리는 또 하나의 수많은 ‘나’로 결코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네가 걷고 있는 DMZ 평화의길의 의미를 이렇게 다시 되새기고, 그 길 위 대자연속으로 들어가 너 또한 대자연의 일부가 되는 한걸음들에만 충실하도록 하거라. 그 다음과 그 밖은 너의 몫이 아니며 네가 하는 것 또한 아닌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드넓은 하늘의 일인 것이며 나아가 그 하늘들을 품은 캄캄한 배경인 우주의 일인 것이다. 너를 벗고 그 하늘로 그 어둠으로 깊이 나아가거라. 그것이 바로 보잘 것 없는 이 어미를 통해 O계가 지난 몇 년간 부단히 너를 단련시켜왔던 O계수련의 핵심인 것이다.
- 네 어머님. 다시 마음을 바로 추스릅니다. 아무것도 아닌 제가 진정 아무것도 아님으로써만 가능한, 대자연을 통해 하늘과 우주와의 연결통로로 임하며 제게 주어진 소임을 위해 주저없이 나아가겠습니다. 주어진 매일의 한걸음 속에서 DMZ의 대자연과의 교감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어머님의 말씀과 깊은 사랑으로 마음을 바로 잡아, 목숨을 내어놓고 어머님과 스승님께서 가신 그 길을 본받아 쉼 없이 흉내 내며 제게 주어진 길을 꿋꿋이 헤쳐 나아가겠습니다. 오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D6. 2025년 9월 4일 (목) 비, 30-1코스 원통시외버스터미널/원통중앙공원~인제DMZ평화쉼터/설악금강서화마을 (24km)
- 전체 일정 : 2025년 8월 29일 ~ 9월 27일 (30일간)
- 진행 방향 : (동쪽끝에서) 34코스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 ~ (서쪽끝으로) 1코스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