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1978년 4월의 어느 쾌청한 날 오후에 나는 진구 구장에 야구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그해의 센트럴리그 개막전으로,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히로시마 카프의 대전이었습니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하는 낮 경기입니다. 나는 그 당시부터 야쿠르트 팬이었고, 진구 구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센다가야의 하토노모리하치만 신사 옆입니다) 산책 나감 김에 자주 야구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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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말, 다카하시가 제1구를 던지자 힐턴은 그것을 좌중간에 깔끔하게 띄워 올려 2루타를 만들었습니다. 방망이가 공에 맞는 상쾌한 소리가 진구 구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띄엄띄엄 박수 소리가 주위에서 일었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런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옮김, 〈제2회 소설가가 된 무렵〉,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현대문학, 2021년, 전자책
무라카미 하루키가 진구 구장에서 야구를 보다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하루키의 이야기에서 의심스러웠던 부분은 그때까지 한번도 글을 쓰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작가가 될 수 있는지였다.
살면서 한번도 글을 쓰지 않다가 어느날 영감이 찾아와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 일필휘지로 글을 쓴다. 그럴듯한 신화다. 데뷔작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작가는 많다. 어떤 이들은 천재 작가라는 신화에 부응하기 위해 다소 과장된 표현을 하기도 했다.
과연 한번도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작가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하루키는 오랜 의문을 해결해주었다.
시합이 끝나자 하루키는 '신주쿠의 기노쿠니야에 가서 원고지와 만년필(세일러, 2000엔)'을 구매해 그날 '밤늦게 가게 일을 끝내고 주방 식탁 앞에 앉아 소설 썼'다고 한다. 그렇게 반년 만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초고를 썼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한 소설을 투고한 결과가 군조 신인상이라면 하루키는 천재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다음 하루키는 이렇게 술회한다.
자유로운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점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애초에 소설이라는 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전혀 가늠조차 못 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때까지 19세기 러시아 소설이며 영어 페이퍼백만 마구잡이로 읽어대느라 일본의 현대 소설(이른바 '순수문학')을 계통을 세워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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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충 '아마 이럴 것이다'라는 어림짐작으로 소설 비슷한 것을 몇 달 동안 써 본 것인데, 다 쓴 것을 읽어봤더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별로 재미가 없어요. '에이, 이래서는 아무짝에도 못쓰겠다'하고 실망했습니다' 뭐랄까, 일단 소설의 형식은 갖췄는데 읽어도 재미가 없고, 다 읽은 뒤에도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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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는 소설 쓰는 재능은 없구나'하고 힘이 쭉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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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을 썼는데 첫판부터 그렇게 술술 멋진 작품을 써낼 수 있을 리가 없지요.
같은 책 中
이 이후 하루키는 타자기를 이용해 외국어로 문장을 쓰며 글을 쓰는 재미를 느끼고, 자신만의 문체를 획득한다. 새로운 문체로 초고를 완전히 수정해 다시 쓴다.
그 결과가 군조 신인상을 수상한 현재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다.
진구 구장에서 야구를 보다가 응원팀의 선수가 2루타를 날리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데뷔작을 집필, 군조 신인상을 탄다. 하루키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데뷔작을 쓴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과정은 생각과는 달랐다. 그가 직접 밝힌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오해할 뻔 했다.
물론 데뷔작의 결과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니 분명 재능있는 작가임은 틀림없다.
하루키는 꾸준한 글쓰기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하나다. 그리고 마라토너로도 유명하다.
나는 전업 작가가 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양을 둘러싼 모험』을 쓰던 때부터) 삼십 년 넘게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생활 습관처럼 해왔습니다. 몸이 애초에 튼튼하게 생겼는지, 그동안에 컨디션이 크게 무너진 일도 없고 팔다리를 다친 일도 없이(딱 한 번, 스쿼ㅌ시를 하다가 근육이 찢어진 경험은 있지만), 거의 빠짐없이 날마다 달렸습니다. 일 년에 한 번은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고 철인레이스에도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책 中
장편소설을 집필할 때는 200자 원고지 20매를 매일 쓰고 한 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한다.
간단하지만 이 지난한 작업을 하루키는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내가 의뢰를 받아 조금씩 일을 시작했을 무렵, 어느 편집자에게서
"무라카미 씨, 처음에는 어느 정도 대충 써나가는 느낌으로 일하는 편이 좋아요.
작가란 원고료를 받으면서 성장해가는 존재니까."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과연 그럴까'라며 반신반의 했는데
이렇게 옛날 원고들을 다시 읽어보니 납득이 갔습니다.
수업료를 내는 게 아니라 원고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더 나은 글을 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영미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 비채, 2011년, 13p
조금씩 더 나은 글을 쓰려면 꾸준히, 그리고 피드백을 받으며 쓰는 방법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