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우리는 카공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카페 주인을 만나보기로 했다. 카페 주인은 구석진 테이블에 앉은 남녀가 새로 온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 절망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사정인지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입니다. 카페에 남녀 한 쌍이 매일 방문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단골손님이 생겼다고 무척 좋아했지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어요. 한 주간 관찰하다 보니 부부처럼 보이는 이 한 쌍이 하루 종일 카페에 머무르는 거예요. 교양 있는 시민인 저는 미소로 그들을 응대했어요.
하지만 해도 너무해서 이렇게 제보합니다.
백...ㅅ 아니 글을 쓰는 직업에 종사하는 부부 같아요. 아침 9시부터 정오까지 글을 쓰고,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고 돌아온 2시부터 8시까지 카페를 방문한 친구들과 대화해요. 저녁 역시 외식으로 해결한 후 당연하다는 듯이 돌아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부부가 카페를 운영하는 듯이 보일 지경이에요.
참을 수 없는 점은 이들이 에스프레소 한 잔만 시켜놓고 종일 머무른다는 거예요.
답답한 마음을 와이프한테 털어놓으니, 와이프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우리 카페 바로 옆에 있는 가게에 이들을 소개해 주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죠.
다음날, 출근 도장을 찍은 그들에게 웃음 띤 얼굴로 다가가 잠봉뵈르를 서비스로 내어주며 말을 붙였어요.
좋은 카페가 있으니 그곳을 소개해 준다고 하자 돌아오는 답이 기가 막혔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카페래요. 거기다 단골이었던 카페라는 겁니다. 우리 카페가 더 따뜻해 옮겼다는 말에 할 말을 잃게 됐죠.
옆 카페는 참 운도 좋아요. 진상 손님도 우리 카페로 옮기고요.
듣자하니 다른 카페는 술 마시고 돈이 없어 외상 하나 맡기고 도망간 손님 때문에 장사가 더 잘 된다는데 이 손님들도 뭐 하나 남겼으면 좋겠네요.
진상 손님들의 얼굴을 공개합니다.
저 뻔뻔한 면상 좀 보세요.
'악마의 음료'라 불리던 커피. 커피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자 자연스레 카페가 생기기 시작했다.
집에서 마시고 손님을 초대해 대화를 나눴다면 카페 주인을 괴롭힐 일도 없겠지만, 손님을 초대할 공간이 모두에게 있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카페에 모였다. 카페에서 다른 손님들과 이야기하고 예술을 논했다.
커피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고 활력은 불온을 낳았다. 한잔 들이켠 커피가 두뇌를 깨우자 초롱초롱한 눈으로 시국을 비판하고 혁명을 논의했다.
혁명가들이 토론할 적에는 그 옆에서 평범한 시민의 옷을 입은 경찰도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듣는다. 참으로 평등한 장소였다.
커피값이 없던 나폴레옹은 외상으로 모자를 카페 프로코프에 맡겼다. 모자가 카페의 전시물이 되고, 혁명이 일어나 더 평등한 시대가 찾아와도 여전히 카페는 회전율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보이면 자연스레 들어와 커피 한 잔을 시켜 앉는다. 마주 앉아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식사 시간이다. 밥을 먹으면 와인이 생각나고 와인이 들어가 취기가 오르니 왠지 아까 들은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주먹과 주먹, 말과 말이 오가며 집기가 허공에 날아오른다. 낭만과 예술의 시대였다.
헤밍웨이가 뤽상부르 공원에서 살이 오른 비둘기를 잡아 배를 채우던 시절, 춥고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카페는 안식처였다. 예술을 논하는 벗과도 만나고 유일한 끼니인 비둘기를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할 수 있는 거리의 따뜻한 카페.
작업실로 삼은 카페에서 글을 쓰다 자주 보는 사람과 낯을 익히고 가끔은 식사도 한다. 벗이 알려준 좋은 소식 덕에 더 따뜻한 곳으로도 옮긴다. 카페의 주인도 새로운 손님에게 눈치를 주지 않는다.
카공족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손님들은 외상 대신 이름을 남겼다. 오늘날에도 이름 때문에 카페를 찾아가니 손해는 아닌 장사다.
낭만의 시대는 저물었으니 추가 주문은 잊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