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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말이 아니다

by 백수광부

들었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는다. 유명한 요리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잘못 찾아오지는 않았다. 가이드 북에 나온 설명과 가게의 메뉴명은 같다. 이제는 100년 전 문호의 입맛이 의심스럽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유럽의 섬나라 영국.

제국의 유산도 있지만 악명이 높은 것도 있다. 그중 하나는 요리다. 영국 요리에 대한 농담은 차고 넘쳐 좋은 소리를 찾기 힘들다.

영국에 가보지 못한 이들마저도 영국 요리에 대한 악명을 들을 정도니 이쯤 되면 그 맛이 궁금하기도 하다.


wY9Y-KVxPaDy82WscMcrgbEPLHMSUcO21d6PXQtZLKUhr6y7mdHZ-wPcp8Xqlx60-Nh7JqXor6XOb6WRrtAQpw.webp 영국 음식 스타게이지 파이


이러한 영국 요리에 대해 한 세기 전 기록을 남긴 이가 있다.

1853년, 구로후네가 근대 일본인들의 머리를 들이박은 이후 일본은 근대화에 박차를 가한다.

제국주의 열강을 닮고 싶은 마음으로 그들을 연구했다.

근대화 교육을 위해 고용한 고등교육기관의 외국인 교육자는 급여가 많았다. 교육자를 일본인으로 대체하고 발전한 서양 문명을 익히게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문부성의 국비유학 제도가 생겼다.

그리고 문부성이 임명한 최초의 유학생이 <마음>,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을 쓴 일본의 국민 작가 나쓰메 소세키다. 그는 문부성의 명을 받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제국주의의 토양을 쌓기 위한 제도였지만 소세키의 마음은 달랐다.

소세키는 백 년 전 영국 요리를 증언하는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식사는 언제나 오트밀이다. 이는 서양 사람들의 일반적인 식사 메뉴다. 그들은 오트밀에 소금을 넣어 먹는다. 우리 일본인들은 설탕을 넣어 먹는다. 밀로 죽을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인데 우리 입맛에도 맞는다. 존슨의 색인(사무엘 존슨의 영어 사전)에는 ‘오트밀은 러시아에서는 사람이 먹고 영국에서는 말이 먹는 음식’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영국에서는 오트밀을 아침 식사로 먹고 있는 사람이 그다지 신기해 보이지도 않는다. 영국인이 아마도 말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다.

《런던 소식》 中


가축이 먹는 음식을 영국인이 먹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백인들은 동양에서 온 소세키를 원숭이 취급했다. 말에 가까워진 백인들은 식민지의 풍족한 요리 기술이 들어와서야 사람이 먹을만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슐랭 가이드에도 나오는 영국의 맛집들은 식민지의 흔적이다.

월화수목금금금 오트밀을 먹던 100년 전의 요리는 지금과는 달리 더 맛이 없고 빈곤했음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영국에서 소세키는 기존의 공부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자기본위’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기본위란 타인을 맹목적으로 답습하는 ‘타인본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는, 근대적 주체 의식을 확립하는 사상이다.


우울한 날씨, 부족한 유학비, 양인들의 차별, 소화불량 등이 소세키의 신경쇠약을 부추겼다. 귀국 후 신경쇠약을 치유하려는 방편이 소설 쓰기였고 그 소설이 바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다.


영국 음식에 대한 소중한 기록을 남겼던 소세키는 귀국 이후 입맛을 잃게 되었다. 평생을 괴롭힌 위장병은 어린 시절부터 그를 따라다녔다.

도쿄제국대학(현재의 도쿄대)의 초빙 교수 라파엘 폰 케벨이 소세키를 집에 초대했을 때의 일이다.

소세키는 라파엘에게 특별한 요리가 먹고 싶다고 말했고 라파엘의 전속 셰프 호리구치 이와키치가 냉장고에 있던 고기와 달걀을 이용해 솜씨를 발휘했다.


색다른 요리를 한입 먹은 소세키가 말했다.


“그래, 이 맛이야!”


쇼에이테이松栄亭의 양식 가키아게洋風かきあげ


입맛을 되찾은 소세키는 호리구치가 1906년, 쇼에이테이松栄亭를 창업하자 이내 단골이 된다.


쇼에이테이는 아직도 영업 중이다. 대문호의 입맛을 찾아준 음식을 지금도 먹어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여행객 한명이 바쁜 여행 일정 중 하루를 쪼개어 쇼에이테이를 방문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특선 메뉴 양식 가키아게洋風かきあげ를 주문한 여행객.

그러나 양식 가키아게는 너무나 맛이 없는 음식이었다.

그는 유명한 음식인데 맛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이상해 종업원에게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답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맛을 아직도 지키고 있다.’였다.

그렇다면 '예전부터 내려오는 맛'이자 소세키가 입맛이 돌게 한 그 맛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눈치 빠른 이는 짐작할 것이다. 바로 영국 음식의 맛이다.

영국 음식이 소세키의 혀를 길들였다. 말에 가까워진 사료를 추억하게 되었다. 인간은 변한다. 혀도 변한다.

어쩌면 쇼에이테이를 방문할 때마다 소세키는 영국 음식의 맛이 그리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기본위’가 흔들릴 때마다 말에 가까운 사료를 먹던 영국 생활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시 잡았던 것이 아닐까.

인간은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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