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앞두고 나는 쓰네

《마감책〆切本》과《작가의 마감》

by 백수광부

원고지에 글을 쓰던 시대에는 자택에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하고,

컴퓨터를 이용하는 근래에는 집에 갑자기 벼락이 내리쳐 정전된다.

마감을 앞둔 시기에 발생하는 기묘한 우연이다.



숙제라는 이름으로 인생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마감.

그런 마감은 글을 쓰고 읽고, 편집하는 이도 공감하게 되는 소재다.


사유샤左右社가 2016년, 엮고 펴낸 《마감 책〆切本》에서는 메이지 시대부터 현재의 무라카미 하루키에 이르기까지 마감에 시달리는 작가들의 눈물 나고 웃음이 터지며 편집자는 이가 갈리는, 에세이, 편지, 일기, 대담 등 여러 일화를 수록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로 국내에도 알려진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감기 기운이 있다는 핑계가 발전해 아내가 감기에 걸리고, 그 다음엔 장조모, 이어서 고양이마저도 감기에 걸린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화내고 날뛰지 않는 편집자야말로 부처와 같다고 다카하시는 쓴다.


《도구라 마구라》의 작가 유메노 규사쿠는 의뢰받은 원고는 못 쓰지만 하이큐와 와카, 센류(모두 일본의 시 형식) 이십몇 수는 순식간에 써버리니 마감을 앞두고 원고 이외의 일들만 술술 풀리는 모습이 학생들과 다르지 않다.


전후파 작가인 우메자키 하루오는 독감이 걸려 원고를 쓰지 못하겠단 농담이 다음날 현실이 되고, 이를 믿지 못한 담당 편집자가 자택을 방문하기에 이른다.

조금은 살만해진 37.5도의 체온. 우메자키는 담당 편집자가 원고를 독촉할까 봐 체온이 38도를 넘는다며 거짓말을 한다.

담당 편집자가 직접 체온계로 온도를 잰다.

작가의 마감 싫어 정신은 그 순간 육체를 초월해 체온까지 바꾸어 정말로 38도를 넘어버리니, 마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주는 일화라 할 수 있다.


《마감 책〆切本》은 첫 단행본이 3만 부, 후속편인 《마감 책〆切本 2》가 2만 부를 기록하고 굿즈인 마감 부적《〆切守》이 나올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본의 도서 감상 사이트인 독서미터에서도 독자들의 감상이 600개가 넘을 정도로 높은 관심을 끌었다.


사유사에서는 이러한 인기에 힘을 얻어 유명인들의 돈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돈 책お金本》, 인지印紙로 살펴보는 작가들의 일화집인 《문호와 인지 文豪と印影》를 연이어 출간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서적이 나왔다.



앞서 소개한 《마감 책〆切本》의 번역서인 줄 알았지만 역자 후기를 보니 그게 아니어서 의아했다.


《작가의 마감》과 《마감 책〆切本》 , 《마감 책2〆切本2》에 실린 작가들의 원고를 비교해 보니 동일한 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웃나라에서 화제가 되었던 책을 정말 몰랐을지 의문이 들어 《작가의 마감》을 읽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마감을 주제로 다른 나라 작가의, 그것도 멀게는 100년 짧게는 50년 지난 글을 찾아 엮고 우리 말로 옮길 마음을 먹은 걸까? 그건 아마도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나쁜 마음에서 비롯됐디. 농담이고 「책장 식당」이라는 일본 드라마에서 시작됐다.
두 명의 만화가가 원고 마감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자 책 속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모습이 펼쳐지는 그 드라마를 보다가 '위대한 작가는 창작의 고통을 어떻게 해소했을까' 궁금해서 아오조라 문고에 들어가 'しめきり'를 검색해봤다. 생각보다 글이 많이 없었다.
어라, 뭐지?작가 별로 일일이 찾아봐야 하나? 일단 전집 목록부터 살펴봐야겠군. 그때부터 시간이 있을 때마다 (중략)작가의 숲에서 내가 원하는 나무를 찾아 헤맸다. 이건 아니야 저건 아니야 하며 고르고 고른 끝에 쉰 그루의 나무를 구해 마침내 『작가의 마감』으로 엮었다.

나쓰메 소세키 외, 《작가의 마감》 , 안은미 옮김 (서울: 정은문고 2021), 중쇄를 꿈꾸며, 전자책 中


드라마 〈책장 식당〉은 《마감 책〆切本》 출간 이전인 2014~2015년에 방영되었다.


《작가의 마감》은 일본 근대 작가의 글로만 채워져 있다.


저작권이 해결되는 근대 작가의 원고들만으로 두 서적을 비교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마감 책〆切本》을 참고해 기획한 서적이었다면 근대 일본 작가의 원고가 다수 일치했을 것이다. 그쪽이 원고를 찾기도 수월하니 말이다.


그러나 직접 비교해 보니 일치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정말로 우연히 기획이 겹쳤다.


마감을 주제로 하는 작가들의 기록이 그렇게 많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15쪽에서 18쪽은 인쇄 실수가 아닙니다! 오늘 다모리 씨의 원고는 마감 시간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담당자A(이름은 비밀입니다)는 충격이 큰 나머지 요 며칠 몸져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다 조금 전 새파란 얼굴로 교정실에 나타나서 새하얀 지면을 보자마자 "헤게마게세게베게, 대머리!"라고 괴성을 지른 뒤 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당분간 저 녀석은 못 쓰겠군. 중얼중얼 중얼중얼... (쯧!) 지금 편집부는 대혼란 상태입니다.

〈새하얀 지면〉, 『반장난』 편집부, 같은 책 中


오늘날도 마감을 앞둔 작가들이 흰 여백을 채우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원고를 퇴짜맞거나 병마에 시달리며 글이 한 자도 써지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쓴다.


원고를 조금 기다려 주겠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상황을 살펴보러 왔다는 말에는 눈시울까지 뜨거워졌다. 고맙기 그지 없다
(중략)
어찌 됐든 나는 오늘도 아등바등 글을 써 내려간다. 그것 말고 다른 길이 없는 신세니.

하야시 후미코, 〈어느 하루〉, 같은 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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