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Chinese Assassin

마보융의 ⟪장안 12시진⟫

by 백수광부

한참 고개를 올려다봐야 할 높이의 한 건물. 그 건물 위로 후드를 쓴 암살자가 올라선다.

조심스레 몸을 숙이며 움직이는 그는 건물을 지키는 경비병에게 다가가 소리 없이 제압한다.

방해가 사라진 건물 안에 들어간 암살자는 방안에 있는 보물을 품 안에 넣었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시체를 누군가 보고 경보가 울렸다.

암살자는 경보를 듣고 쫓아오는 경비병들을 피해 달린다. 그는 아래를 흘깃 쳐다본다.

뛰어내리면 죽는 높이.

암살자는 기억해 두었던 한 지점에 도달하자 망설임 없이 건물 아래의 건초더미로 도약한다. 고깃덩이가 돼야 마땅한 몸을 건초더미가 부드럽게 받아내자, 경비병들은 사라진 암살자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유비소프트의 게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게이머가 암살자가 되어 고대부터 현대까지, 아시아·중동·유럽·신대륙 등 다양한 지역을 탐험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오픈 월드 게임이다. 오픈 월드 게임은,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게임 속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뛰어난 그래픽으로 배경이 되는 세계를 구현해 게임 속에서 역사적 명소들을 찾아다닐 수도 있다.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부터는 캐릭터를 조종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디스커버리 투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게임의 유해성 논란을 해결하고 게임 소스를 재활용하며 역사도 교육하는 일석삼조의 프로그램이다.


교육 현장에서 디스커버리 투어를 활용해 수업 시간에 활용한 예도 있다.




이런 명소를 복원이 될 때까지 볼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나자, 프랑스 대혁명이 무대인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에서라도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제작사인 유비소프트도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를 기간 제한으로 무료 배포했다.

게임에서 사용했던 대량의 사진 자료들을 활용하면 대성당 복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 와전되어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의 자료가 복원에 쓰인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만큼 게임의 고증이 높이 평가받은 일화라 할 수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로 예전에 출시한 게임이 주목을 받기도 했거니와 세계적 유산이 훼손되었기에 유비소프트는 복원에 성금을 보태었다.

2024년 11월,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이 완료되었다.



최근에는 유비소프트 출시작들의 흥행 실패와 그에 따른 실적 악화로 중국의 게임 회사인 텐센트와 함께 합작해 핵심 IP 자회사 설립을 발표했다.


중국 게임 회사인 텐센트와의 합작으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제작 방향도 다소 달라지리라 본다. 차기작이 나온다면 배경은 중국이 아닐까. 진나라가 시대가 배경인 Jade가 개발 중이지만 모바일 게임이다. 중국을 배경으로 또 다른 시대의 어쌔신 크리드가 나온다면 그 힌트가 이 소설에 있을지도 모른다.


⟪풍기농서⟫로 데뷔한 중국의 소설가 마보융은 드라마로도 제작된 소설 ⟪장안 12시진⟫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창작 동기를 밝힌다.


이 소설의 대략적인 구상은 누군가 쯔후에 올린 질문에서 시작됐다.
⟨만약 ‘어쌔신 크리드’ 스토리를 제안받는다면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하시겠습니까?⟩
(중략)
이 질문을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바로 당나라 수도 장안성이었다.

마보융, 양성희 옮김, 《장안 24시 -하》, 현대문학, 2018, 전자책 中



《장안 24시》는 특수 기관인 정안사의 수장 이필이 사형수 장소경과 함께 예견된 테러를 24시간 이내에 막는 이야기다. 즉, 미국 드라마 〈24시〉의 당나라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작가 마보융은 중국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첩보소설 《풍기농서》 를 비롯해 역사소설을 주로 다루며 긴장감 넘치며 빠른 전개를 장기로 하는 작가다. 앞서 언급한 《풍기농서》 를 비롯한 다른 작품들과 함께 이 작품도 영상화되었다. 소설의 원제는 드라마와 같은 〈장안 12시진〉이다.

독자의 빠른 이해를 돕는 의미와 미국 드라마 〈24시〉의 영향으로 제목을 《장안 24시》로 바꾸었음을 짐작 가능하다.


왜 당나라 시대 장안일까?


장안은 '서양에는 로마가 있다면 동양에는 장안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인구 100만을 자랑하는 대도시였다.

또한 실크로드라 불리는 교역로를 바탕으로 동서의 교류가 가장 활발한 시기였기에 다양한 나라와 인종을 등장시키기도 수월하다.


삼국시대에도 유학을 간 인사들이 여럿이며 양귀비나 안녹산, 현종을 비롯한 인물들 또한 익숙하니 우리에게도 낯선 시대가 아니다. 작중에서는 국내의 삼국시대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복잡하고 거대한 장안의 도시 구조 역시 테러라는 소재를 활용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역사적 기록 또한 풍부하기 때문에 활용하기에도 좋다. 기록이 풍부한 조선 시대가 관련 매체가 많듯 당나라도 자료가 많다.


예를 들자면 국내에도 번역된 《당나라에 간 고양이》와 같은 서적이 있다. 당시 당나라 사람들의 삶을 귀여운 고양이의 모습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천보 3재 원소절, 장안에 큰불이 있었다'라는 간략한 기록에서 출발한 상상력은 당시의 기록을 활용해 장안을 뛰어다니고 원소절을 겪는 것처럼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이러한 배경에서 작가가 당나라의 장안을 떠올렸다 생각한다.


마보융은 SNS로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며 연재했다고 한다.

상하권을 합쳐 1,000p에 달하는 여정의 마무리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점은 당나라 장안으로 안내하는 작가가 너무 지친 탓이 아닐까 싶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중화권 장르 소설에도 뛰어난 작가가 등장해 한층 반갑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시엔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