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러프의 《러브크래프트 컨트리》
흑인 청년 애티커스는 길거리에서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물을 길어 가던 부인의 항아리를 깨뜨렸다. 화난 부인이 꾸짖었다.
"이 아이가 어미가 없어서 이처럼 논다."
애티커스는 부끄러워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편지로 물었다.
“우리 어머니는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아버지의 답장이 왔다.
“너의 어머니는 흑인이라 나라에서 용납되지 못했다. 어머니의 조상은 남쪽에 있어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유산을 남겼다. 세상을 떠날 때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아들을 낳으면 내가 남긴 물건이 있는데 그것을 매사추세츠주 아덤 마을 아래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하시오. 만약 이것을 찾는다면 곧 가족들은 나의 아들임을 알겠소.’라고 하셨다.”
애티커스는 이 말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러 아버지를 찾아갔으나 그는 백인 남자와 홀연히 사라졌다. 자신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란 말을 남기고.
에티커스는 조지, 러티샤 등의 두 사람과 함께 떠나 남쪽 아덤으로 향한다.
유리왕 설화로 재구성한 애티커스의 이야기
주인공은 어머니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평범하다.
흑인인 주인공은 어머니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그래도 평범하다.
흑인인 주인공은 어머니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 남쪽으로 떠난다. 조금 구체적이지만 평범하다.
1954년 흑인에 대한 차별이 합법화된 시기, 흑인 주인공이 어머니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 인종차별이 가득한 남쪽으로 떠난다. 긴장이 절로 된다.
《러브크래프트 컨트리》 에서 주인공 애티커스는 앞서 재구성한 설화처럼 어린 시절 모진 소리를 듣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그가 17세 때 죽었다. 전쟁에서 막 돌아온 그가 아버지를 찾아 나선 이유는 부친 몬트로즈에게 어머니의 조상과 유산에 대한 비밀을 알아냈다는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안전한 흑인 여행 안내서〉를 가이드 삼아 인종차별로 인한 불편과 백인 경찰의 검문을 뚫고 찾아간 시카고. 애티커스는 시카고에 도착해 한숨을 돌린다. 시카고는 흑인 대이동 기간에 남부에서 50만명의 흑인이 이주한 상대적으로 안전한 도시기 때문이다. 일자리, 주택, 그리고 자유가 있던 곳이다.
그러나 부친 몬트로즈는 한 백인과 함께 어디론가 떠났으며 어디로 향했는지는 애티커스가 알 것이라라는 소식을 듣는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북부의 여행도 불편한 시선과 백인 경찰의 검문이 있었다.
목적지는 백인 인종차별자들이 가득한 남부 매사추세츠주의 아덤이다. 큰아버지 조지, 친구 러티샤와 함께 세 명의 흑인은 위험한 남부로 떠난다.
남부로 향하는 길은 인종차별자만 있지는 않다.
강렬한 양념 하나를 추가했다. 바로 인종차별주의자로도 유명한 작가 H.P 러브크래프트가 시작하고, 어거스트 덜레스가 확장한 가공의 신화 체계인 크툴루 신화다.
먼 옛날, 신들이 지구를 창조할 적에
제우스처럼 아름다운 형상으로 처음 인간을 빚었다.
그다음에는 역할이 덜 중요한 짐승을 만들었는데,
인간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그 틈을 메꾸고, 인간과 나머지 피조물을 연결하고자,
올림포스 거주자들은 기발한 계획을 구상했다.
인간에 준하는 형상으로 짐승을 빚어
그 안을 악덕으로 채우고는 깜둥이라 칭했다.
H. P 러브크래프트 - 〈깜둥이의 창조에 관하여〉
당시 흑인에게 인종차별이란 호러와도 같은 존재인데 거기에 초자연적인 요소를 추가했으니 긴장을 넘어 훙미롭다. 작중에서도 1950년대 흑인이 겪는 공포와 위협이 잘 드러나있다. 그리고 크툴루 신화의 '그것'들까지도.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있는 작가는 인종차별자에게 호러물의 형식으로 영리하게 복수를 한다.
맷 러프는 흑인이 아닌 백인 작가지만, 주인공 애티커스가 읽어나가는 장르소설에 대한 평은 어쩌면 맷 러프가 유년 시절 보았던 소설에 대한 평일지도 모른다. 러브크래프트와 어린 시절 읽은 장르 소설의 노골적 혐오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러브크래프트는 흑인 뿐 아니라 동양인 역시 공평하게 혐오했다. 크툴루 신화는 러브크래프트가 시작했으나 이젠 그만의 것이 아니다. 현재는 인종차별적 세계관은 제거되어 창작되고 있다.
차별의 대상이었던 유색인종들에겐 크툴루 신화의 창조주에 대한 이 복수극은 유쾌하다. 거기다 주인공 애티커스는 한국 전쟁에서 막 돌아온 군인이니 우리나라 사람은 더욱 흥미가 갈 수 밖에.
《겟 아웃》과 《어스》로 초자연적이고 사회적인 공포를 능숙하게 다루었던 조던 필 감독도 이 소설에 주목해 드라마로 만들었으니 드라마도 함께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