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의 〈일대종사〉
판소리와 클래식이라는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소리꾼 이자람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스승에게 배운 기예를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것과 해당 분야의 종사자 와 향유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나아가지 않으면 쇠락할 분야.
두 사람은 그 흐름을 거스르고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각자의 영역에서 타협하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판소리에 비하면 클래식의 사정은 훨씬 낫지만 두 사람이 친분이 있는 이유는 이러한 공통점 때문이리라.
나아가지 않으면 쇠락할 기예. 그 기예 중 특히 전승이 중요한 기예는 무술이다.
한 제자에게만 모든 것을 전하는 일자전승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스승에게 배운 재주를 후대에 전해주어야 전승이 끊기지 않는다.
나는 무술을 잠시 접하고 배웠다. 그중 중국 무술은 배웠다고 하기 민망한 수준으로 접했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배웠으나 팔과 다리를 움직이고 몸에 활력을 돋우는 그 움직임에 매료됐다. 무술의 이치에 따라 몸이 효과적으로 움직일 때 재미를 느꼈다. 거리에서 사람을 쓰러뜨리거나 링에 오를 것도 아니니 내가 강하고 약한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꾸준히 했다면 좋은 일이나 병역 의무와 다른 사정으로 이어 나가지 못했고 기간도 짧았으니 배웠다기보단 접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나마 널리 보급된 태극권이나 우슈가 아닌, 특정 중국 무술은 가르치는 선생님도 몇 없다.
지금도 그 사정은 더 좋아지진 않았다.
그 무술을 다루는 매체도 적다.
영화 〈일대종사〉에는 많은 중국 무술이 나온다.
무술이 무엇보다 중요한 영화이기에 제작진은 대륙과 홍콩, 대만의 형의권, 팔괘장, 팔극권, 영춘권, 태극권, 심의권 등의 노사(선생님)들을 찾아갔다. 노사들은 배우들이 짧은 기간 무술을 그럴듯하게 표현할 수 있게 도왔다.
양조위의 경우, 그를 지도한 영춘권의 엽준 노사가 게으름을 질타했다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엽준 노사가 지도한 배우가, 어머니가 유명한 태극권사이며 어릴 적부터 무술을 수련한 견자단이었으니 더 비교되었으리라.
극 중에서 팔극권사로 출연하는 장첸은 무술대회에서 연무로 우승했고 장쯔이는 팔괘장이 마음에 들었는지 영화 촬영이 끝난 후에도 파리에서 팔괘장 수업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호기심에 장첸의 연무와 장쯔이의 수련 지속 유무를 계속 찾아보니 장첸의 실력은 기대 이하였고 장쯔이는 팔괘장을 계속 수련하지 않았다.
여하튼 잠시나마 접했던 희귀한 무술이 나오는 영화가 촬영에 들어가고, 배우들은 중국 무술계의 유명한 노사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 감독은 〈동사서독〉, 〈중경삼림〉 등으로 유명한 왕가위라니 기대가 될 수 밖에.
2009년 촬영을 시작한 영화는, 엽문을 다루는 또 다른 영화 〈엽문2〉가 개봉 후 그 열기가 식은 2013년에 이르러서야 개봉했다.
오랜 기다림에 이은 불만과 무술을 평가하려던 마음은 영화가 시작하는 5분 동안의 강렬한 영상미로 사그라들었다. 몇몇 무술의 재현도와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다.
작중 무술인들은 거듭 사진을 찍어 시간을 정지하고 기억하려고 한다.
사진을 찍어도 시간은 결국 흘러간다.
평생을 수련하며 살아온, 영춘권의 엽문과 팔괘장의 궁이에게 무술은 더없이 중요하다.
숨을 쉬는 것처럼 매일 쌓아온 무술이 그들의 자긍심이다.
무술은 제자를 통해 전해진다.
궁가64수 팔괘장의 전승자인 궁이는 무술가에게 중요한 전승 대신 복수를 택한다.
무술을 전수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으며 자식을 남기지도 않는다.
무술가에게 뒤가 없는 맹세다.
궁이는 덧없이 사라질지언정 긍지를, 아름다움을 택한다.
아름다운 시절을 돌아보며 연기처럼 스러진다.
더없는 아름다움과 긍지, 그리고 사랑은 누가 전할 수 있을까.
빛바랜 사진을 쳐다보아도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간다.
시대와 세월의 거대한 파도가 그들을 삼킨다.
파도가 지난 자리엔 남아있는 이가 있다.
그가 묵묵히 전할 뿐이다.
"쿵푸란 둘 중 하나다.
수평과 수직
지면 수평으로 쓰러지고
서있는 자만 말할 자격이 있다."
〈일대종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