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화공생

우치다 다쓰루의 《목표는 천하무적》

by 백수광부



토가시 요시히로의 만화 〈헌터 X 헌터〉는 느린 연재로 악명이 높다. 연재 기간보다 휴재 기간이 더 길다. 허리 통증이 심해 책상에서 작업 가능한 시간이 많지 않다.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는 게임 〈드래곤 퀘스트〉에 중독되어 작업에 소홀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았다.

장기간 휴재 중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의 만화를 기다리는 팬은 많다.


여느 때처럼 〈헌터 X 헌터〉가 휴재 중일 때 유튜브에 한 네티즌의 영상이 올라왔다.

작중에 등장하는 캐릭터 아이작 네테로의 수련법에서 영감을 받아 감사의 정권 지르기를 1000 번 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정권 지르기는 도장에서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편집자도 알 수 없는 작가의 연재 재개까지 영상을 올린다는 무모한 계획은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며 계속 이어졌다.

이 독특한 시도는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되어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늘었다.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 알려지기까지 했다.

이런 바람이 작가의 허리에도 닿았는지, 〈헌터 X 헌터〉의 연재가 재개하자 네티즌의 정권 지르기도 막을 내렸다.

연재 재개까지 2년 4개월이 걸렸다.

네티즌의 새 도복은 너덜너덜해지고 정권 지르기도 처음에 비하면 그럴듯한 모습이 되었지만 잘못된 동작의 반복으로 나쁜 버릇이 들고 말았다.


매일 정권 지르기를 하는 의지로 2년 4개월 동안 도장을 다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그러나 네티즌은 정권 지르기로 매일의 스트레스를 풀며 연재 재개라는 소망을 이루고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도 확보했으니 그것으로도 목표 이상을 이루었다 할 수 있다.


연재 재개를 위해 독학으로 정권을 지르던 네티즌과 달리 오랜 세월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도장을 다니고 무도적 사고를 한 이가 있다.

스승의 이름은 다다 히로시며 아이키도 9단의 95세 노인이다. 제자는 우치다 다쓰루라고 한다.


아이키도는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창시한 근대 무술이다.

상대의 움직임에 맞서 싸우지 않고 힘의 방향을 전환하며 경쟁적인 시합이나 경기를 하지 않고 약속된 형태의 기술을 주고받는 유술이다. 상대와 다투지 않는 평화의 무술을 추구한다.


우치다 다쓰루 사범의 스승 다다 히로시 9단의 아이키도 연무


상대와 다투지 않는 평화의 무술은 대체 무슨 소리일까. 무술과 평화가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인가.


아이키도를 50년 수련한 우치다 다쓰루 7단의 서적 《목표는 천하무적》은 그 해답을 제시한다.

우치다 사범은 ‘거리의 사상가’로 불리는 일본의 철학자로 불문학자, 번역가, 에세이스트, 무도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그의 저서가 50여 권이나 번역될 정도로 유명하다.


생계 수단이 대학교수일 뿐이며 ‘본업이 무도가’라는 바람답게 1층은 도장, 2층은 자택인 개풍관이라는 개인 도장까지 만들었다.


1.jpg?resize=696%2C522&ssl=1 고베에 위치한 우치다 다쓰루 사범의 도장 개풍관


《목표는 천하무적》의 원제는 무도적 사고武道的思考다.


무술을 배운 사람은 적고 그중에서도 아이키도를 배운 사람은 더욱 적다.

그러니 무도적 사고, 아이키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무슨 소용인지 의문을 표할 수 있다.

걱정은 접어두어도 된다. 쉽고 친절하게 우리가 왜 무도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우치다 사범은 중등 교육 과정에서 무도 수업을 반대한다. 무도 수업의 본질이 무도 그 자체가 아닌 애국심을 기르고 예의범절을 가르친다는 목적을 위한 도구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본업이 무도가라는 사람답게 진정으로 무도를 사랑하는 발언이다.


그가 말하는 무도의 목적이란 천하무적이다.

정신을 차리니 발밑에는 시체들이 쌓여 있고 강산이 피로 물드는 60억분의 1이 되자는 말이 아니다. 살인의 기술을 모르는 독자가 추구할 목표도 아니고, 권하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적이다.

아저씨 개그를 하는 상사, 아직 못 본 드라마의 줄거리를 미리 말하며 방귀를 계속 뀌는 동료, 새벽마다 뛰어다니는 위층의 이웃, 학부모 상담을 하게 만드는 자식 같은 부정적 영향을 주는 사람뿐 아니라 여름철 모기, 코로나바이러스, 노화 등 나를 둘러싼 세계의 온갖 것이 될 수 있다.


이 적을 그때마다 없앨 수는 없다. 노화 제거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적이 인간이라도 완전범죄는 힘들고 성공해도 후환과 꿈자리가 두렵다.

경계하고 주의하면 적을 쓰러뜨리지 않아도 대부분의 적성을 해제할 수 있다. 적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노화를 주제 삼아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도 있고, 상사와 아저씨 개그를 같이 나누거나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이웃에게 슬리퍼를 선물하는 등 적절히 대처한다면 관계는 변한다. ‘지원자, 협력자’가 된 이들은 더는 적이 되지 않는다.

나를 돕는 사람을 적대하는 이는 많지 않다. 타인을 도우며 살아간다면 적을 만들지 않게 된다.

우치다 사범은 이렇게 ‘자기 자신을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바꾸어’ 적응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진화’하는 것이 천하무적이라고 말한다.


저는 한국 사람을 만나면 우선 “우리 조상이 여러 가지로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라고 먼저 사과합니다. 사과해도 계속 화내는 사람은 만난 적이 없어요. 다들 “우치다 선생이 한 게 아니니까요”라고 말합니다. “아, 그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성의를 보여라, 성의”라고 야쿠자처럼 윽박지르는 사람도 없습니다.

목표는 천하무적》 中


무도적 사고는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실용적 지혜가 된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감각을 기르고 복잡한 현대사회라는 전장에서 적응하고 생존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물론 아이키도로 이러한 감각을 기르면 더욱 좋을 터이다.


대한합기도회 홈페이지


KAU 아이키도 삼성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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