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네이버 지식iN에 질문이 하나 올라왔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에 대한 질문이다.
소설을 무척이나 읽고 싶지만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으니 구매처나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곳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이하 우감일야)를 좋아하는 어느 네이버 회원은 이 딱한 사정을 읽고 여섯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일반론과 비도덕적인 방법, 우감일야의 일부를 올린 사이트의 링크, 원서를 읽으라는 약올림 등이 적혀있었다.
그중 눈에 띈 답이 우감일야의 애독자임을 증명한 방법이었다.
앞의 5가지 방법들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실행하기 어렵다... 그럴 때에는 방법이 또하나 있습니다. '우감일야'는 아시다시피 굉장히 포스트모던하고 철학적이고 유머스러우면서도 황당하고 야하고 웃기는 책입니다. 즉, 횡설수설이라는 이야기 되겠습니다. 이 책은 사람이 쓴 것입니다. 선조들의 지혜를 되새겨 보신 다음 워드를 켜세요.(원고지와 펜, A4종이와 연필, 화장실 휴지와 루즈, 그외 가능성 있는 많은 조합이 있습니다) 자, 이제 잠깐 자신을 잊고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되시는 겁니다. 인간은 모두 형제입니다. 우주가 열립니다. 곧 천지개벽이... 아, 채널이 약간 어긋났군요. 아무튼 이제 님이 무아지경에서 '우감일야'를 쓰셨다고 치겠습니다. 다시 자신으로 돌아와서 텍스트를 감상하세요.
출처: https://kin.naver.com/qna/detail.naver?d1id=3&dirId=307&docId=55552391&enc=utf8&kinsrch_src=pc_tab_kin&qb=7Jqw7JWE7ZWY6rOgIOqwkOyDgeyggeyduCDsnbzrs7jslbzqtaw%3D
우감일야를 구하던 사람은 네이버의 그 질문자뿐만은 아니었다. 절판으로 중고 도서의 가격이 10만 원으로 치솟기도 했고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전전했다는 간증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우감일야가 대체 무엇이기에 네이버에 해괴한 답변이 달리고 중고도서를 구하는 이들이 늘어났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1985년, 일본 프로야구에 이변이 일어났다.
1935년 창단한 이래 50년 동안 일본 시리즈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한신 타이거스가 우승한 것이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팬들은 외국인 타자와 닮은 누군가를 찾다가 KFC 매장 앞 커넬 샌더스 인형을 도톤보리강으로 던져버렸다.
그 이후 한신 타이거스는 우승과 거리두기를 하였고 이를 ‘커넬 샌더스의 저주’라 불렀다.
저주를 풀기 위해 한신 타이거스는 거액을 투자해 전력을 강화하거나 샌더스의 동상을 건져내는 등 온갖 노력을 했으나 더러운 도톤보리 바닥에 가라앉은 원한이 그리 빨리 풀리지는 않았다. 더 오래된 역사에도 불구하고 롯데 자이언츠보다 적었던 1회의 플레이오프 우승 기록은 2023년이 되어서야 바뀌었다.
우감일야에서는 이 소중한 우승 기록이 사라졌다. 우승을 한 번밖에 못 한 것도 팬에게는 서러운데 한신 타이거스가 우승한 적이 없다니 무슨 소리일까. 진짜 야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야구(死語)......아주 옛날에 사라졌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긴 것으로 둥근 것을 치는 게임이라고도 전해진다. 지면에 네모난 것을 놓고 악귀를 쫓았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中
우승할 리 없는 팀이 우승하니 진짜 야구가 사라졌다. 지독한 회의주의다.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젊은 시절 학생운동에 가담해 구치소에 구금됐다. 구치소에서 그는 말을 잃어버렸다. 실어증이다. 석방된 뒤에도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아 이를 회복하는 것만도 10년이 걸렸다. 문학청년은 다시 펜을 잡기 위해 잃어버린 말을 처음부터 다시 쓴다. 길을 잃은 언어를 다시 정의한다.
문학을 믿었기에 10년 동안 의심하고 회의하며 돌아본다. 진정한 문학이란 무엇인가.
다카하시는 문학과 언어에 대한 오랜 성찰로 야구가 사라진 시대에 진짜 야구가 무엇인지를 쫓는 여정인 우감일야를 썼다.
이 여정은 일반적인 소설과는 다르다. 파편화된 이야기는 비논리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란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감일야는 서사와 언어를 해체하고 재구축하며 소설이 허구임을 강렬히 드러내는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없애 현실을 모사하는 것이 목적인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소설과 달리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은 허구임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어 재현 자체의 불가능함을 밝힌다.
랜디는 야구가 사어가 된 세계에서 야구에 관한 말들을 모아 진짜 야구를 재현하려고 한다. 야구에 대한 말이 모일수록 진정한 야구와는 멀어진다.
야구가 사라진 시대에 야구하지 않고 말을 기워 붙여 야구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말을 기워 붙이는 문학 또한 동일하다.
극단적일 정도로 자유로운 언어 유희는 야구에 빗대어 일본 문학의 한계를 지적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현실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다.
현실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고 언어만이 남아있다. 언어가 현실을 만든다.
우감일야는 이 새로운 현실에서 문학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버지들의 방법은 미적지근했습니다. 그건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그냥 놔두기만 한 것이에요.
(중략)
이번에는 여기에서 '일본 야구'를 하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삭제하겠습니다. 그게 가장 어울립니다. 그리고 어머니, 당신은 취소하겠습니다. 물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취소해 드리겠습니다. 어느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좋을지는 취소하면서 생각해 보죠. 그리고 맏형, 당신은 너무 복잡해. 그러니까, 말소하겠습니다. 완전한 말소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뿐만 아니라 당신에 관한 건 거의 전부 말소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덩치 큰 형. 여동생은 "저 얼간이는 아무리 축소시켜도 곧 원상태로 돌아올 게 뻔해"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도 같은 의견입니다. 당신은 생략해 드리겠습니다. 생략입니다, 생략. 알겠어요? 자, 그리고 막내 형. 당신은 교환 당하고 싶습니까? 만일에 교환을 원한다면 무엇과 교환되고 싶습니까? 가정 생활과는 어때요? 아니면 등장할 기회가 없는 핀치히터하고의 교환은 어때요?
같은 출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