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초인은 없다

마크 밀러의《슈퍼맨:레드 선》

by 백수광부



가끔은 초인적인 힘을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랄 때가 있다.

큰 재난이나 테러,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무력하게 바라봐야만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누군가 도와주면 안 될까. 누군가 막아주면 안 될까. 누군가 구해주면 안 될까.

현실은 만화가 아니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여러 사람의 용기에 의해 상황이 바뀌기도 하고 현명한 이의 판단으로 비극을 막기도 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초인적인 누군가가 실제로 존재하면 어떨까?

머릿속을 스치는 수많은 이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한 이름을 꼽아보자면 역시 이 사람이다.


슈퍼맨.

사람들은 그를 이민자로 안다. 크립톤 행성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켄트 부부에 의해 발견되어 자라났다.

사람들은 그를 초인으로 부른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총알보다 빠르며 탈것과 날것은 가볍게 드는 근력에 낮말도 밤말도 을 수 있는 귀를 지녔고 입바람만으로 태풍을 만들며 눈으로 투시하고 빔을 쏘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받든다. 고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신의 행위에 빗대어 생각했다. 사람들을 구하고 악당들을 때려잡는다. 제발 살려달라 기도하는 아이 앞에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준다.

평범한 인간이 아닌 초월적 능력을 지닌 존재가 선한 마음으로 의를 행한다. 천재지변과 달리 인간의 모습으로 말하고 운이 좋으면 만날 수도 있다. 날아다니며 TV에도 그 모습이 보인다. 타락하고 부패한 정치인이나 기업가와 달리 그는 올곧은 존재다.

사람들은 가끔 그를 변태라고 믿는다. 푸른 쫄쫄이 옷 위에 붉은 팬티를 당당하게 입고 있다. 대로를 활보하고 카메라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는다. 얼굴 가죽의 두께는 두말할 것 없이 강철 피부다. 얼굴이 강철이 아닌 팬들이 슈퍼맨에게 고유의 복장을 입는 당위를 만들어주었다.


만화와 영화로도 익숙한 슈퍼맨을 어떻게 하면 흥미롭게 다룰 수 있을까.

타락하지 않는 정의의 화신, 신에 가까운 힘을 가진 초인에 대해 다시 노래하기엔 재미없다.

65년 반복하는 이야기는 지루하다.

바뀌지 않는 사람을 바꾸려면 주변을 바꾼다. 환경을 바꾼다. 경험을 바꾼다.

슈퍼맨이라는 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내놓은 결과물이 《슈퍼맨:레드 선》이다.




⚠️ 스포일러 주의

이 아래부터 작품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해당 작품을 감상하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켄트 부부가 캔자스 외딴 시골집에서 어느 날 잠을 자고 있을 때 무서운 캡슐을 탄 아기를 발견하는 이야기가 바뀌었다. 슈퍼맨이 떨어진 곳은 소비에트 연방, 즉 공산주의가 득세하는 시절의 구소련이다.

강철의 사나이는 소련에서 자라난다.

빨간 물이 들긴 했지만 올곧은 초인은 생각한다.

왜 소련은 굶주리는가. 왜 인민들은 평등하지 않는가.

노동자의 영웅은 빠르고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그런 세상을 만들자.


전지전능한 초인 독재자가 탄생했다.

초인 독재자와 구소련이란 설정 속에 DC 코믹스의 친숙한 캐릭터들을 집어넣어 구운 후 내놓는다.

배트맨, 렉스 루터, 원더우먼, 그린 랜턴, 로이스 레인, 브레이니악 등.


강철의 낯짝을 가진 사나이에게 수정 펀치를 날리는 배트맨,

빨갱이, 아니 슈퍼맨에 대적하는 렉스 루터,

원더우먼, 로이스 레인에게 마음을 뺏기는 슈퍼맨은 변함없다.

변한 것은 배경이다.


그 어떤 틈과 불만도 허용하지 않는 올곧음은 공포요, 타락이 되고

재난 그 자체인 초인은 전쟁과 기근을 없애고 싶었을 뿐이지만 소망은 비극이 된다.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초인적인 힘을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 멈춰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초인은 없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결정짓는 것은 결국 자유의지를 가진 평범한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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