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화장실

요시다 켄스케의 《르코르뷔지에 미워》

by 백수광부



어둡고 폭풍우가 치는 밤이었다.

침실에 있던 남자는 아랫배에 신호가 오는 바람에 잠이 깨었다.

침실은 2층에 있었고, 화장실이 있는 욕실은 1층이다.

단순히 계단만 내려가면 되는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남자는 침실에 있는 우산을 익숙한 듯 집어 들고 방문을 열었다. 비바람이 남자의 야간 외출을 환영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가운데 공간에는 천장이 없기 때문이다.

우산을 강하게 때리는 비바람에 잠이 달아난 남자는 아랫배를 자극하는 신호에 마음이 점점 급해졌다. 거센 바람에 우산도 뒤집혔다. 버티기 힘든 신체 반응에 우산을 똑바로 쓸 생각 없이 우산 손잡이만 잡아 계단을 빠르게 내려간다.

남자는 1층 욕실 문을 열자마자 바지를 내려 변기에 앉았다. 해방을 기다리던 유체가 변기 물을 가득 물들였다.

기쁨도 잠시, 허벅지에 느껴지는 냉기는 변기 커버를 내리지 않은 그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휴지걸이에는 휴지가 없었다.

욕실의 거울을 보니 사람인지 물에 젖은 생쥐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잠옷으로 휴지를 대체한다 해도 2층에 있는 침실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남자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문밖에는 비바람이 여전히 몰아치고 있었다.

어둡고 폭풍우가 치는 밤이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집 스미요시 주택은 이렇게 생활에 있어 불편하기 그지없는 건축물이다.


lego10_11-1024x767.jpg 안도 다다오의. 가운데가 뚫려 있는 스미요시 주택 단면 모형


안도 다다오뿐 아니라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르코르뷔지에의 이런 일화가 떠올랐다.

어느 집인지 잊어버렸지만(틀림없이 빌라 사보아가 아닌가 추측하는데), 비로 누수가 생겨 르코르뷔지에가 불려 들어갔을 때, 그 집에 가서 누수로 만들어진 물웅덩이에 종이배를 만들어 띄웠다는 일화가 있다.
"설마 그럴 리가"라고 믿지 않았지만,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똥배짱은 거물 건축가의 필수조건이라고 확신한다.

《르코르뷔지에 미워》 中


요시다 켄스케의 《르코르뷔지에 미워》는 건축가의 관점에서 근대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신화를 부수는 책이다.

전문적인 용어로만 쓰인 책은 아니다. 쉬운 설명으로 유명 건축가의 신화를 해체하는 가벼운 책이다.


프랑스 시골 푸와시에는 르코르뷔지에가 사보아 부부를 위해 지은 별장 빌라 사보아가 있다.

빌라 사보아는 르코르뷔지에가 주창한 현대 건축의 5원칙을 살펴볼 수 있는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주택이다.


AKR20230531118500005_01_i_P4.jpg 현대 건축의 5원칙을 실현한 르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

현대 건축의 5원칙은 다음과 같다.


1. 필로티

건물을 기둥으로 들어 올려 공간을 만든다.

2. 자유로운 평면

건물의 하중을 벽체가 아닌 기둥으로 지탱해 내부 벽을 건축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구획한다.

3. 자유로운 파사드

필로티로 자유로워진 건물 정면을 자유롭게 꾸민다.

4. 옥상정원

옥상을 평평하게 만들어 정원으로 꾸미고, 면적 손실을 회복해 녹지로 활용한다.

5. 가로로 긴 창

가로로 길게 연속 창을 내어 자연광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주변 경관을 볼 수 있게 만든다.


현대 건축의 5원칙을 실현한 대표적인 건축물이기에 시골에 있음에도 젊은 시절 저자 같은 건축가나 학생들이 매년 빌라 사보아를 보러 찾아온다.


르코르뷔지에는 습기가 있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빌라 사보아의 2층을 필로티로 들어 올렸지만, 사진에서 잘 보이지 않는 1층에도 침실이 있었다. 건강에 좋지 않은 그곳에는 운전사와 가사 도우미의 방이 있었다.

저자는 ‘허공에 떠 있는 듯이 보이게’하기 위해 ‘습기도 있고 건강에 좋지 않은 곳’에 가사 도우미와 운전사의 방 세 개를 넣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르코르뷔지에는 건조하고 건강한 공간을 위해 필로티로 2층에 건축주의 방을 만들었다며 설명했다.

건강에 해로운 점을 알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운전사, 도우미의 방을 1층으로 만들어 그들의 존재를 지우고 있다는 태도가 저자에게는 거슬린다. 물론 건축주에게도 좋은 저택은 아니었다.

춥고 습하고 비가 새는 온갖 문제를 안고 있어 사보아 부부도 전쟁 이후 현대 건축의 기념비적인 주택으로 돌아오지 않고 버려두었다.


위와 같이 이 책은 건축가의 다소 삐딱한 관점에서, 잘 알지 못했던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의 신화를 해체한다.


구성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있다.

《르코르뷔지에 미워》는 다소 산만한 구성이다.

르코르뷔지에가 주창한 현대 건축의 5원칙을 되짚으며, 건축을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벽돌을 쌓아가듯 그의 건축물의 문제를 짚고 탐구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저자는 르코르뷔지에와 무지성적 찬양을 비판하지만 르코르뷔지에를 마냥 부정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르코르뷔지에에게 건축주란 건축을 설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저자 역시 르코르뷔지에의 입장에 동의한다.

건축주라는 손님을 만족시키고 그들을 즐겁게 하는 것만이 건축은 아니라 말한다.

일을 얻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지만 설계에서 타협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힘들게 따온 일을 온갖 방해와 장애를 뚫고 자신의 철학대로 실현한다.

이 '똥배짱'이야말로 건축가가 지녀야 할 태도라 긍정하고 그 대표적인 건축가가 르코르뷔지에라 말한다.


1층 화장실에 가려면 우산을 써야 하는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주택.

우리 시대 똥배짱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도 스미요시 주택의 상태가 걱정되어 건축주에게 가운데 공간에 지붕을 씌우길 권했다. 폭풍우 치는 밤에도 우산을 쓰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 주택은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건축주는 ‘여기까지 온 이상 계속 이렇게 살겠습니다’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건축가의 똥배짱이 가끔 건축주에게도 스며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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