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나라에서 찾아온 경찰관

마이 셰발, 페르 발뢰의《로재나》

by 백수광부



한 여성이 스웨덴 예타 운하에서 발견됐다.

여성이 발견된 날짜는 7월 8일.

여성은 앞으로의 일정이 없다.

걸친 옷도, 장신구도 없다.

말도, 부끄러움도 없는 여성이다.

당연하다. 시체니까.

시체 한 구가 추운 나라에 떠올라 경찰을 움직인다.

요람은 몰라도 최후를 스웨덴에서 맞이한 여성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로재나》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경찰 소설이다.

경찰 소설은 단순히 주인공이 경찰인 소설이 아니라, 경찰 조직 내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찰과 현실적인 수사 절차를 주로 그리는 소설을 말한다.

경찰 소설에서는 셜록 홈스나 에르퀼 푸아로와 같이 비현실적인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


주인공 마르틴 베크 뿐 아니라 콜베리, 멜란데르 등도 회색 뇌세포는 아니다.

'이런 사건쯤은 눈 깜박할 새에 해결해드리지요’라고 말하는 탐정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국경을 넘어서 벨기에로 찾아갔을 터이다.

경찰들이야말로 범인이 빨리 잡히길 바라니까.


여성의 사인 死因은 분명하지만 이름도 성도 신원도 모른다.


질의:탐문 수사에서는 뭔가 건졌습니까?
응답:아직 진행 중입니다.
질의:요약하면, 경찰의 수중에는 철저한 수수께끼뿐이라는 겁니까?
그 질문에는 청장이 대답했다.
“수사 초기에는 대부분의 범죄가 수수께끼입니다.”

《로재나》 中

청장의 답변대로 수사 초기의 범죄는 수수께끼다.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데 반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탐정이라면 나가떨어질 시간이다.

탐정에게 사건은 유희나 의뢰지만 경찰에게는 의무다.

즐거움이란 없고 오랜 수사로 가족들의 원망을 사기 마련이다.

때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깜빡하기도 한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걸려 오는 전화나 외박, 외출에 가족의 눈치도 본다.

사건을 쫓는 동안 외롭지만은 않다.

눈총을 피해 출근하면 국가범죄수사국 살인수사과의 동료들이 있다.

고충을 같이 하는 동료들이다.



“수면을 충분히 취하도록 해. 나는 매일 여덟 시간씩 자지. 뒤통수가 베개에 닿는 순간 잠들어."

“자네 부인은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나?”

“아무 말도 안 해. 아내가 나보다 먼저 잠들어버리는걸. 가끔은 불을 끌 새도 없이 둘 다 자버린다니까.”

“허풍하고는. 아무튼 내가 요즘 잠을 잘 못 자긴 해.”

“왜?”

“나도 몰라. 그냥 잠이 안 와.”

“그러면 뭘 하나?”

“말똥말똥하게 눈을 뜬 채로 누워서 자네가 얼마나 따분한 파트너인지 생각하지.”

같은 서적 中


가정보다 일에 더 몰두하는 경찰의 모습은 그리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소설이 쓰인 시대(1960년대)를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집에서는 바가지를 긁히고, 교통비를 아끼려 지하철을 타고 소화불량에 시달리며 동료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하는 마르틴 베크는 이전까지는 없었던, 진짜 사람 같은 경찰 캐릭터였다.


마르틴 베크는 몸을 곧추세웠다. ‘경찰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는 속다짐을 했다. ‘나는 끈질기고, 논리적이고, 완벽하게 냉정하다. 평정을 잃지 않으며, 어떤 사건에서든 전문가답게 행동한다. 역겹다, 끔찍하다, 야만적이다, 이런 단어들은 신문기사에나 쓰일 뿐 내 머릿 속에는 없다. 살인범도 인간이다. 남들보다 좀더 불운하고 좀더 부적응적일 인간일 뿐이다.’

같은 서적 中

지금 읽어도 별 위화감 없는 소설이지만 배경이 되는 시대만큼은 다르다.

60년대란 배경은 답답한 수사에서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은 당연히 없고 인터넷도 없다.

해외 수사관과의 수사 공조는 전화국으로 거는 국제전화로 이루어진다.


지난한 수사 과정도 살인수사과의 경찰들의 바쁨이 지루함을 없앤다.

참고인과 용의자 심문, 동료들과의 대화, 경찰의 일상,

60년대 스웨덴을 발로 뛰는 경찰들을 눈으로 쫓다 보면 범인의 정체도 마침내 실마리가 잡힌다.

범인의 실마리가 잡혀도 경찰으로서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린다.

이쯤 되면 경찰 업무가 정말 힘들구나 싶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기와 집념으로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은 체포에 성공한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동일 작가가 아닌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의 공저다.

두 사람은 각 장마다 번갈아가며 집필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썼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공동의 문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 같은 캐릭터의 대화 역시 일상적이다.


60년 전 작품이지만 낡은 소설은 아니다.

살인수사과의 매력적인 경찰들이 현실적인 수사를 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추리물 본연의 재미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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