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거, 내 목숨도 팔아보죠

미시마 유키오의《목숨을 팝니다》

by 백수광부




어느 날 하니오가 불안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바퀴벌레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는 않았다.

히나오의 흔해빠진 일상에 별다른 이유가 있었다. 석간신문의 활자가 갑자기 바퀴벌레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걸 계기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해 죽기로 결심했다. 포부는 좋았으나 저승이 그를 거부했다.

깨어나 보니 바퀴벌레가 되기는커녕 뒤통수의 극심한 통증이 그가 아직 이승에서 할 일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죽음을 각오했던 이상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렇다.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남들 눈치를 보지 않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갔다.

히나오를 거부한 저승행 특급열차를 예매하는 미래다.

프러포즈가 한번 거부당하자 기죽는 초식남이 아니다. 포기를 모르는 젊은이다. 젊은이다운 패기와 열정으로 새로운 미래를 위해 삼류 신문 구직란에 광고를 낸다.


"목숨을 팝니다. 원하시는 목적으로 써 주십시오. 저는 27세 남자. 비밀은 절대 보장, 결코 폐를 끼치지 않습니다."


《목숨을 팝니다》 中



그리고 구매자가 연이어 나타난다.


저승행 특급열차를 끊는 방법은 간단하다.

플랫폼에 들어서는 기차에 뛰어드는 방법도 있고, 실패한 시도처럼 수면제를 다시 복용할 수도 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목을 매는 방법도 있다.

살아남는 방법만큼 죽는 방법도 다양할텐데 어째서 이 남자는 자살하지 않고 목숨을 파는 것인가.


히나오는 드디어 오늘 밤 죽으려는 참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의지는 단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 통쾌했다.
자살은 귀찮고, 애당초 너무 드라마틱하니 취향에 맞지 않았다.
또한 남의 손에 죽으려면 무슨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남에게 그런 원한이나 증오를 살만한 일을 한 기억은 없고,
남의 손에 죽을 만큼 강렬한 관심을 받기도 싫었다.
목숨을 판다는 것은 무책임하면서도 멋진 방법이었다.

같은 서적 中


흔해빠진 일상을 누리던 히나오는 목숨을 팔아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한다.


미시마 유키오의 《목숨을 팝니다》는 〈주간 플레이보이〉의 연재소설이다. 이 소설은 잡지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쓰인 장르 소설이다.

히나오의 목숨을 사는 구매자는 평범한 이들이 아니다. 평범한 이들이 아니니 벌어지는 사건도 기묘하기 그지없다.

미시마 유키오가 작정하고 쓴 장르 소설은 연재소설답게 에피소드마다 서스펜스가 빠지지 않는다. 히나오의 목숨을 산 기묘한 의뢰자들과 사건이 흥미를 돋운다.

이야기의 전체 얼개는 다소 헐거워 플롯을 미리 짠 글이라기보다 연재하며 이야기를 구성하고 마지막에 통일성을 추구한 느낌이다.


가볍게 스텝을 밟는 문체 덕에 그만큼 빠르게 읽힌다. 기묘한 구매자와 사건으로 소설은 현실보다는 환상에 더 기대어있다. 목숨을 내놓고 되는대로 사는 히나오처럼 이야기도 정처 없이 흘러가 마지막에 이르면 기묘한 이야기의 내막이 밝혀진다.


주인공 히나오를 비롯한 인물들의 쿨하고 표연한 태도로 인한 하드보일드적 분위기,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기묘한 사건 등은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듯한 현대적 느낌도 든다. 소설이 쓰인 연도가 1968년임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SE-9f072b14-dee6-4f1d-b0c3-4049f4fe4cc6.jpg?type=w773 헌법 개정과 자위대 궐기를 촉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미시마 유키티


미시마 유키오와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일본 헌법 개정과 자위대 궐기를 주장하며 할복을 한 그의 최후 때문만은 아니다.

미숙아로 태어나 몇 차례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최후를 맞이한 사십 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죽음을 강렬하게 의식했다. 그러하기에 작품 속에서 죽음의 상징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미시마에게 죽음은 예술의 완성을 위한 행위이자,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다.


언제나 죽음을 의식한 미시마가 본격적으로 주인공이 죽음을 파는 《목숨을 팝니다》를 썼다는 사실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잡지 연재소설이기에 가볍게 써나간 작품에서 이러한 퇴폐적 죽음, 비극적이면서도 에로티시즘 한 죽음이 전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희미하게 내비치는 핏빛 에로티시즘과 죽음의 상징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미시마의 문장은 ‘금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치가’ 뛰고 ‘도덕의 퇴폐가 극에 달한’ 시대에 목숨을 ‘저속한 금전으로 바꾸려는’ 나사가 하나씩 빠진 듯한 인물들을 그려나가며 가볍고 빠르게 질주한다.

경쾌한 질주 속에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무겁게 다가온다.


목숨을 가볍게 취급하고, 쿨한 히나오의 이야기는 기존의 미시마의 작품과 달리 퇴폐적 탐미를 추구하지 않는다.

2015년 독자들이 어째서 68년도 작품에 열광하고 드라마로 만들어지기까지 했을까.

이 작품을 다시 주목하게 한 힘은 기존의 미시마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퇴폐적 탐미가 아니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극단적이고 장르적인 설정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오늘날 독자들은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세대로서 공감하며 작품을 읽어나갔다. 장르 본연의 재미와 함께 미시마의 문장도 그 인기에 한몫했음은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은 늘 이런 식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마치 ‘산다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도쿄애드에 다니던 시절, 지나치게 모던하게 꾸민 밝은 사무실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의 양복을 입은 사람들 틈에서 손을 더럽히지 않는 일을 하던 나날이 지금보다 훨씬 더 죽은 상태에 가깝지 않았을까?

같은 서적 中


드라마 〈목숨을 팝니다〉 오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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