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교황이 될 자인가

영화〈콘클라베〉

by 백수광부

어느 날, 교황이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갔다. 선종 소식을 들은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은 교황의 침실이 있는 바티칸 내 숙소 성녀 마르타의 집으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공식적으로 교황의 선종을 선포하는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교황의 방에 들어선 로렌스. 그곳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추기경들과 직원들로 가득 찼다. 방 안 침실로 들어가자, 침대에는 육체만 남은 교황이 보인다. 로렌스는 추기경들과 함께 기도를 한다.

기도가 끝나자 사도궁내원장이 교황의 손에서 어부의 반지를 빼내 트랑블레 추기경에게 넘겨주었다.

트랑블레 추기경은 반지에 흠집을 내고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이자 바티칸 시국의 원수 교황의 선종을 선포한다.


콘클라베는 공석이 된 교황을 선출하기 위하여 추기경들이 폐쇄된 공간에서 3분의 2의 찬성이 나올 때까지 치르는 투표다.

12월 3일, 비상계엄으로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었다. 선고기일 발표가 예상보다 늦어지자 사람들은 콘클라베처럼 헌법재판관들을 가두어야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겠냐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영상미도 돋보이는 영화 〈콘클라베〉 는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교황의 선종으로 콘클라베가 열렸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바티칸 시국에서 열리는 낯선 의식의 안내자로 추기경단 단장 토마스 로렌스를 선택한다. 그가 관객들의 눈과 귀, 발을 대신한다. 로렌스는 교황이 될 생각이 없고, 고된 업무에서 얼른 떠나고 싶으며 자신의 신앙을 의심하는 사람이다.

추기경 중 평균 연령대인 70 중반의 나이, 야심이 없고 자신의 신앙마저 의심하는 사람, 그가 이 영화에서 홈즈이자 가이드가 된 이유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 교회에 봉사하는 동안,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죄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종국에는 확신을 두려워하시지 않았던가요? ‘주여,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Eli, Eli, lama sabachtani).’ 십자가에서 9시간을 매달리신 후 고통 속에서 그렇게 외쳤죠. 우리 신앙이 살아 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가 없겠죠.

의심하는 교황을 보내주십사, 주님께 기도합시다. 바로 그 의심 덕분에 가톨릭 신앙은 계속해서 생명을 얻고, 그로써 전 세계에 영감을 줄 것입니다.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고 또 실천하는 교황을 주십사, 주님께 기도합시다. 자, 다 함께 기도합시다. 모든 순교자와 성인, 사도의 여왕, 지극히 성스러운 마리아의 이름으로 로마 교회가 대대손손 영광되기를 바라나이다, 아멘.

소설 《콘클라베》 中


모든 추기경은 교황이 되고자 하는 야심과 가슴 속에 품은 법명이 있다. 작중 벨리니 추기경이 뱉는 말이다.

어쩌면 이말은 적어도 영화 내에서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교황이 선종한 침실에서도 견제를 시작한 추기경들의 야심찬 레이스가 콘클라베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자 시작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추기경들은 인종적으로 다양할 뿐만 아니라 진보, 중도, 보수 등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다.

느리지만 거스를 수 없는 변화다. 가톨릭 신앙은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


교황이 될 야심이 있는 추기경이 후보로 나선다. 더러는 자격이 없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 야심은 대의가 된다. 어떤 이에게 대의란 야심을 가리기 위한 포장이다.

뜻을 같이하는 이의 야심을 대의로 포장한다. 들키지 않기 위해 대의를 내세운다.

상황이라는 호랑이가 자신을 등에 태우고 달려간다. 나라면 어떨까라는 마음이 저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든다. 호랑이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점점 내리기 힘들어지고 변명을 한다.

나만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내리지 않는다. 스스로를 속인다. 내리는 사람과 내리지 않는 사람만 있다.

호랑이는 용기 있는 자만이 내릴 수 있다.

가슴 속에 품은 법명은 타인은 모르지만 자신은 알고 하나님은 알고 있다.

무엇이 대의인지 그들 자신은 알고 있다.


증오, 분열, 확신이 가득한 시대다.

누가 교황이 되야 하는가?

누가 교리와 신앙의 수호자가 되야 하는가? 어떤 가치를 지금 세상에 전해야 할까?

그리고 무엇이 옳은가?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는 영화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의 대비 등을 통해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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