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영화 〈잔다르크〉

by 백수광부
sScMQcx5kH2fUuhfeeAvSptRMSr.jpg 뤽 베송 감독의 영화 〈잔다르크〉


<Fate/Zero>라는 라이트노벨 원작의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당시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방영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불법 CD로 접하던 시절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Fate/Zero>에는 질 드레라는 중세 프랑스의 인물이 등장한다.

질 드레는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의 모티브가 되는 인물이다. 평범한 군인이었지만 어느 사건 이후 흑화, 그러니까 타락해서 각종 기이하고 추악한 짓(고문, 강간, 아동 살해 등)을 벌이게 된다. 그 사건은 잔다르크가 마녀로 몰려 처형당하는 이야기다.


잔다르크는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질 드 레라는 인물은 낯설었기에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어쩌면 잔다르크가 마녀로 몰려 죽은 사건과 질 드 레의 엽기적인 행동은 인과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질 드 레의 기이한 일화가 모함이라는 설도 있다.

질 드 레의 변모가 잔다르크와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가 창작의 세계에서는 더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렇기에 작가 미셸 투르니에(1924~2016)는 잔다르크를 흠모하는 질 드 레의 이야기를 다룬 <지독한 사랑>을 쓰기도 했다.


신의 사자이자 마녀 잔다르크.

질 드 레라는 조미료가 더해지니 평소 관심이 없었던 잔다르크도 다르게 보였다.


영화 <잔다르크>는 이전과 다른 잔다르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질 드 레와의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의 원제는 <The messenger : The story of the arc>다.

‘The messenger’에 주목해보자.


잔다르크가 아닌 그 주변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살펴보자.

바다 건너 영국과 사이좋게 창칼을 교환하던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 전역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자신이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하는 한 시골 아가씨가 있다는 소문이다. 시골에서 떠드는 말이라면 그냥 무시하면 될 법도 하지만 세 사람을 족히 넘는 프랑스인들이 이 소문을 믿고 퍼뜨렸다. 신의 사자라는 소문은 호랑이보다 몸집이 커져 궁 안에도 흘러 들어왔다.

그러니 프랑스의 왕세자 샤를 7세는 진위를 가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광인의 이야기다. 거기다 자신을 노리는 암살자일지도 모른다.

광인을 시험하니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신을 알아보았다.

정말 신이 있는가. 그 신이 나, 샤를 7세에게 왕이 되라는 정언명령을 내린 것인가. 반신반의하며 그는 광인을 전장으로 보낸다.


잔은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테스트를 통과하지만 사실 증명을 할 길이 없다.

인간이 신을 불러낸다면 인간이 아니다. 이적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전장의 지휘관들은 뜬금없이 나타난 시골 아가씨를 보고 황당하다.

영국과 싸우기도 바쁜데 창칼 하나 든 적 없는 새파란 아가씨가 나타나 무조건 성을 공격하고 진격해야 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영화는 잔이 ‘그’의 메시지를 받는 부분은 짧게 처리하고

나머지는 잔과 그녀를 믿지 못하는 이들의 갈등과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자가 전장에서 뭘 제대로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의 사자가 정말 사실인지 의심하는 시선을 내내 보여준다.

사실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환상을 본 잔다르크에게 이러한 시선은 답답하고 어리석기 그지없다. 그녀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모습을 보았다. 그녀에게 ‘그’, 즉 신은 현신해 실존하고 있다.

그러니 신의 가호를 의심 없이 믿고 깃발을 들며 앞선다. 전쟁의 경험이 없어도 그 말씀이 검에 깃들 것이다.

전장에서 그녀는 상징으로서의 아이돌이자 검을 들고 싸우는 전사다.


잔다르크를 바라보는 인물들이 의심에서 확신으로, 그리고 다시 배신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의 궤적은 충분히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니 잔다르크가 고난을 겪기 시작할 때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은 뜬금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역사대로 프랑스의 위기를 구한 잔은 결국 버림받는다.


영화의 후반부는 잔의 고난을 보여주고 있다.

잔이 고문을 받고 버려지고 감옥에 있을 때 한 남자가 다가와 그녀를 힐난한다.

네가 본 것이 과연 진짜 ‘그’인가,

너는 무엇이기에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가,

신의 이름을 함부로 빌려 사람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닌가 등을 말이다.


잔은 자신의 행동은 신의 뜻이 아니었고 복수심에서 벌인 일이라 인정하고 화형대에 오른다.

잔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그’인지 ‘그의 사자’인지 ‘양심’인지 ‘악령’인지는 불분명하다

영화 또한 명확하지 않은 메시지로 끝난다.


그녀가 구원받았는지, 아니면 거짓말을 후회하며 죽어갔는지,

그녀가 보았던 것은 진짜 ‘그’인지, 아니면 ‘환상’인지 불분명하다.


뤽 베송의 연출은 산만하고 치밀하지 못했다. 잔을 힐난하는 방식도 꽤 직접적이다.

연출이 의도를 뒷받침하지 못했다고 해도 인간 잔을 조명한 시도는 인상적이었다.


〈콘클라베〉의 로렌스 추기경은 믿음으로 향하는 길은 끝까지 의심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또한 마지막 순간에 확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확신의 인간이 확신하지 못하고 의심하며 들리지 않는 신의 목소리를 기다리다 죽음을 맞이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기다리던 화형대의 잔다르크는 1920년 성인으로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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