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의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구독경제의 시대다.
영상 매체, 게임, 음악, 음식뿐 아니라 도서에 이르기까지.
2018년, 조금은 다른 구독 서비스가 화제를 모았다.
흥미로운 글귀와 투박함이 시선을 빼앗는 홍보 이미지다.
‘일간 이슬아’는 월 구독료 1만원을 내면 주 5일 자신의 글을 구독자에게 이메일로 전송하는 전자 우편 서비스다.
‘아무도 안 청탁했지만 쓴다’라며 구독 독자를 모집하다니 용감한 도전이다.
그런데 이슬아가 누구지?
데뷔작으로 주목받은 작가도 아니고 작품집도 없는 작가였기에 낯선 이름이었다.
신인 작가의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함도 잠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시작했다는 이 서비스의 구독자들은 만족했다. 아니, 만족을 넘어 입소문을 타 구독자는 늘어났다. 6개월의 구독 연재로 학자금을 모두 갚았고 SNS와 출판계에 이슬아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불황의 시대에 출판사나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거둔 성공이었기에 이 서비스의 파장은 컸다.
전자 메일의 형태로 생산자가 소비자와 1:1로 만날 수 있는 구독 모델은 일정한 독자만 확보할 수 있다면 안정적인 수입뿐 아니라 그 이상도 꿈꿀 수 있다.
신인 작가가 휘두른 펜이 길을 내었다.
이슬아의 성과에 고무된 이들은 뒤따라 유료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유료 구독 전자 우편 서비스가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는 올해 3월 연재한 ‘일간 이슬아’의 주제다. 이메일을 잘 쓰는 방법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대체 얼마나 잘 쓰기에 그 많은 독자를 모았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일간 이슬아’를 시작한 2018년도부터 작년까지 구독자에게 보낸 글을 묶은 단행본이 해마다 나왔지만 주 5일 보내주는 이메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구독 신청 기간은 끝나고 단행본 출간 예정일이 더 가까웠기에 신간을 기다려 확인하게 되었다.
2018년이 신인 작가의 계급장 다 뗀 전장이었다면 지금은 더 가혹한 시간이다.
바쁜 일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들여다보는 액정화면에는 날 봐달라며 구애하는 온갖 콘텐츠들이 있다. 날아오는 단톡방의 메시지와 사람이 개를 무는 것처럼 해괴한 뉴스도 빠질 수 없고 유명인들의 SNS나 게임 등도 빠질 수 없다.
그리고 사용자를 더욱 정교하게 분석한 알고리즘을 적용한 쇼트폼 영상이 집중력을 더 흐트러뜨린다.
이 전장에서 구독한 글이 바쁜 출근길에 시선을 사로잡고 시간을 메우며 메일을 보내주는 시간을 기다리게 만든다.
하루 500원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글을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상으로 보내주는 글로도 어려울 판에 유료 서비스라니.
그러면 장안의 화제인 솜씨는 어떨까.
잘 쓴다.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호흡이 좋고 웃음과 더불어 감동을 주며 읽기 쉽다.
작가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냐는 물음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주 5회 일정으로 해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슬아는 그걸 해냈다.
프리랜서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팁들이 있다.
섭외, 주의점, 돈 받기,투고, 수정, 거절, 사과, 다툼, 후일을 도모하기 등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이메일을 잘 쓰는 법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메일을 싣는다. 자신감이 돋보인다. 마냥 잘 쓴 글만 있지는 않다.
여태 받은 이메일들, 자신이 잘못 보냈던 과거의 메일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설명한다. 발로 차주고 싶은 흑역사들도 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노희경 작가를 만나기 위해 열여덞 살에 쓴 이메일이 대표적인 흑역사다.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실린 글은 ‘상당히 오글거리는’ 메일이라고 하지만 뜨겁고 단단한 심지가 있다. 자신감이 있는 작가다. 그러니 ‘이메일을 쓰다가 작가가 되었다’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장기하 같은 유명인의 섭외 편지나 노희경 작가와의 일은 실지로 다른 사람이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원칙을 말한다.
가르쳐준 방법으로 자신에게 섭외의 편지를 보내온 독자도 있었다니 재밌다.
글 사이로 내밀한 사생활이 솔직하게 드러나 자기계발서인지 에세이인지 모르겠지만 읽기 수월하다. 작가는 어느 쪽으로 불리고 팔리든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썼다고 말한다.
솔직하다. 솔직함을 무기로 삼는 에세이스트야 많겠지만 이슬아는 무엇이 다를까.
다정하다.
다정한 시선이 스며든 문장이 숨을 내쉰다. 다정한 사람들과 다정한 마음이 독자를 따뜻하게 만든다.
애정과 관심과 배려를 담아 잘 쓴 이메일이 사람의 마음을 돌리지 않을 수 있을까?
다정함이 독자를 사로잡아 읽게 한다. 기다리게 만든다. 사물을 다시 보게 만든다.
그러니, 다정한 작가의 이야기에 독자는 지갑을 털어 듣는 수 밖에.
나는 자주 착각하곤 한다. 용감한 건 언제나 내 쪽이라고. 친구로서든 메일을 쓰는 직업인으로서든 빠르고 정확하고 야무진 쪽은 늘 나라고. 그러나 묵묵한 애가 십삼년의 시간을 응축해서 보내는 한 통의 메일이 있다. 문자나 전화나 말로 해버려도 되는 이야기를 굳이 메일로 보내는 미련한 친구가 있다. 나는 손이 쓴 것보다 좋은 메일은 써본 적이 없다.
귀인은 동쪽에서 오지 않는다. 도서관 창가 자리에서 온다. 거기서 출발해 멀고 먼 길을 돌아 결국 메일함으로 온다. 느려보여도 분명 오고 있다. 소심하다고 타박해도 부인하지 않으면서, 실은 엄청 큰 마음으로 성큼성큼 오고 있다.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