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남자의 게임

로버트 쿠버의 《유니버설 야구협회》

by 백수광부

어두운 밤, 집 안에서 식탁에 앉은 한 남자가 주사위를 굴리고 있다.

그는 주사위가 기대만큼 잘 나온 덕인지 손뼉을 치며 흥분한다. 남자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언가는 있었다. 알루미늄 맥주 캔과 샌드위치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남자의 이름은 J. 헨리 워이며 승진이나 교제에는 관심이 없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 자신이 만든 야구 게임이다.

세 개의 주사위를 굴려 야구 시합을 한다.

한 경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덞 개의 팀으로 구성된 리그, 유니버설 야구협회(이하 UBA)의 시즌을 돌리고 팀과 선수의 성적을 기록하고 그들의 활약에 열광한다.

루키가 데뷔하고 노장은 은퇴한다. 관중들과 야구단의 스태프, 선수에 이르기까지 이 리그는 환희에 차있다. 헨리 워에게는 메이저리그 못지않은 리그다.

출근부터 업무, 그리고 퇴근에 이르기까지 리그가 헨리 워의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서둘러 퇴근한 헨리 워는 평범한 미국인답게 신발도 벗지 않고 집 안에 들어가 밤이 되면 식탁에서 야구 시합을 플레이한다.

4년 뒤면 환갑이 되는 남자의 목소리와 주사위 소리가 쓸쓸하게 집 안을 채운다.



《유니버설 야구협회》의 주인공 헨리가 하는 행동은 그렇게 유별나지는 않다.

열성적인 스포츠 팬은 출퇴근길이나 직장에서 응원팀의 각종 소식이나 중계를 보고 때로는 마음 맞는 동료들과 응원팀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축구나 야구 매니지먼트 게임인 풋볼 매니저나 OOTP를 즐기는 게이머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팀을 어떻게 구성할지 이적 시장에서는 누구를 노릴지 스쿼드에 대한 상상이 머릿속을 채운다.

컴퓨터로 무엇을 하는지 들키지만 않는다면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하라는 근무는 안 하고 업무와 무관한 요사한 상상을 하니 상사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다.


헨리는 그 상상이 남다르니 문제다.

집 안에서 홀로 게임을 하는 모습은 여느 중년과 다를 바 없다.


고독하고 안타까운 남자의 게임 장면

성적을 기록하는 행위 역시 조금 더 열성적인 게이머라면 할 법도 하다.

그러나 게임에 나오지 않는 관중의 함성, 타자와 투수의 대화, 감독과 코치의 말과 행동, 임원들의 대화 등을 상상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 리그가 의식이 있는 내내 돌아가고 있다면?


소설에서는 헨리의 일상과 UBA의 이야기가 섞여서 펼쳐진다. 헨리의 일상을 게임이 내내 사로잡듯이 한 문단 안에서도 일상과 UBA의 경계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마치 게임을 좋아하는 직원이 근무하다가도 시간이 날 때마다 게임 속 플레이를 떠올리듯이 말이다. UBA에서 헨리의 시점은 게이머의 시점이 아니다.

투수와 타자, 감독, 리그의 임원 같은 UBA 인물들의 시점으로 묘사되어 환상은 생명력을 얻는다.


이런 헨리에게도 볕 들 날이 왔다. 야구 게임을 사람들과 같이 플레이하는 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헨리는 지인들과 UBA란 환상을 공유하지는 못한다.

당연하다. 타인은 환상으로 들어갈 수 없다. 헨리의 고뇌가 자신만의 환상을 만들었다.

규칙을 설명해 주어도 그들에게 UBA란 말없이 주사위 세 개를 굴리는 이해하기 힘든 규칙의 게임일 뿐이다.

헨리가 스스로 환상 속 UBA를 지인들에게 들려줄 순 없지 않은가.

천부적인 입담을 가진 남자가 아니고서야 더 고독하고 이상한 남자가 될 뿐이다.


UBA에서 헨리가 총애하는 신인 투수 데이먼 러더퍼드가 퍼펙트게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면서 헨리의 일상과 루틴은 어긋난다.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지만 헨리는 주사위를 던져 UBA를 바꾸려 한다.

과연 신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피조물은 운명대로 움직일까.


어린 시절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선수들의 플레이를 떠올리거나 신문 기사를 읽으며 경기를 상상 속에서 복기하고 선수들의 카드를 가지고 친구들과 판타지리그를 즐긴 사람들이라면 《유니버설 야구협회》를 헨리처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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