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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여, 희망을 품어라

필립 로스, 폴 오스터, 그리고 야구

by 백수광부


퀴즈 하나.

폴 오스터와 필립 로스.

두 작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유대인 소설가? 아니다. 그리 뻔하지 않다.

근래 타계한 작가? 그것도 아니다. 죽은 작가는 더 있다.

힌트를 준다면 뉴욕과 야구다.

뉴욕 양키스!

틀렸다. 필립 로스는 모르겠지만 폴 오스터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답이다.

정답은 뉴욕 메츠다.



"사회적 거리두기 1년이 우울하다고? 우승과 수십 년째 거리두기는 어떨까? 맞아. 평생 메츠 팬으로 살아보라고. 진짜 시련이지.


A year of social distancing have you blue? How about decades worth of championship distancing.

That's right, Try being a Mets fan your entire life. It's been a real challenge.”


So Many Ways to Lose: The Amazin' True Story of the New York Mets—the Best Worst Team in Sports 아마존 리뷰 中


두 작가는 야구팬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폴 오스터는 폴 벤저민이란 필명으로 쓴 데뷔작의 제목이 야구 용어인 ⟨스퀴즈 플레이⟩다.

이름은 감추어도 야구 사랑은 감추지 못했다. 이에 질세라 필립 로스는 아예 야구 소설 《위대한 미국 소설》로 야구를 향한 사랑을 고백했다.


미국의 위대한 게임이 미식축구와 야구 중 무엇인지 다툼의 여지가 있겠지만 두 소년의 선택은 야구였다.


나는 여덞 살이었다. 내 인생의 그 순간, 나에게 야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팀은 뉴욕 자이언츠였다. 나는 검은색과 오랜지색의 야구모를 쓴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진정한 신자답게 열심히 지켜보았다. 그 팀은 이제 존재하지 않고, 그 팀이 뛰었던 야구장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 팀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명단에 실린 선수들의 이름을 거의 다 술술 읊어댈 수 있다.

폴 오스터, 《왜 쓰는가?》 中


조지 오웰은 그의 에세이에서 자신이 잘하지는 못했지만, 16세까지 크리켓과 길고 절망적인 사랑에 빠져 있었다고 썼다. 나와 야구의 관계도 비슷했다. 9세부터 13세까지, 나는 눈이 오지 않는 계절 동안 동네 운동장에서 적어도 일주일에 40시간을 보냈다—소프트볼, 하드볼, 스틱볼 즉석 경기를 하면서—동시에 지역 초등학교에서 학생으로서 풀타임 근무를 하고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어린 시절 가장 인상적인 두 공적 사건—루스벨트 대통령의 죽음과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소식을 내가 "야구를 하고" 있을 때 들었다.

필립 로스, 〈나의 야구 시절〉 中 https://www.nytimes.com/1973/04/02/archives/my-baseball-years.html



필립 로스는 중요한 시합에서 '침착함과 전문성이 부족했'기에 야구선수에서 팬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야구 선수를 잘 흉내 내던 소년은 글을 쓰며 그 욕망을 풀었다.


"아, 중견수. 중견수가 되고 싶어요 - 그 이상은 필요 없습니다."


필립 로스, 《포트노이의 불평》 中


소년 폴 오스터는 그의 영웅 뉴욕 자이언츠의 영웅 윌리 메이스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그도 가족도 다른 어른도 연필이 없어 사인을 받을 기회를 놓쳤다.

기차 안에서 상실감에 눈물을 흘리던 소년은 뼈저린 경험 덕에 언제나 연필을 갖고 다니게 되었고 연필을 가지고 다니는 소년은 작가가 되었다.



필립 로스와 폴 오스터는 본의 아니게 같은 팀을 응원하게 된다.

폴 오스터는 뉴욕 자이언츠를 응원했고, 필립 로스는 브루클린 다저스를 응원했다.

1957년, 뉴욕 자이언츠와 브루클린 다저스는 팬들의 마음을 저버리고 연고지를 이전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LA 다저스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연고지의 응원 구단을 잃은 두 사람.

또 다른 뉴욕의 구단 양키스를 응원할 생각이 없었던 그들은 1962년 창단한 새로운 뉴욕의 구단, 메츠를 응원했다.


투병 중인 로스의 아버지에게 힘을 준 팀도 바로 메츠다. 86년 로스 부자는 같은 팀을 응원하며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우승의 순간 폴 오스터도 축배를 들었으리라.



너무 오랜 패배에 지친 탓인지 필립 로스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1996년. 로스는 응원팀을 양키스로 바꾸었다.

양키스는 96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고 로스는 우승 팀의 팬이 되는 수혜를 입었다. 로스가 팬이 되기로 결심한 후 우승했는지 아니면 그해 승승장구하는 양키스의 모습을 보고 팬이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우승이 팬심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요즘도 메츠 경기를 보냐는 동료 작가의 물음에 전향을 고백하며 '가끔은 이기는 것도 좋아요'라 답했으니 메츠의 패배가 원인임이 분명하다.



필립 로스와 폴 오스터는 소설의 미래에 대해 논쟁을 한 적이 있다. 필립 로스는 다양한 콘텐츠의 등장으로 소설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본 반면에 폴 오스터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 논쟁이 눈길을 끈 이유는 소설의 미래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문학이 죽음을 맞이했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선언하며 무덤에서 문학을 일으키고 쓰러뜨렸다. 로스도 그 선언에 합류했을 뿐이다.

폴 오스터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렇지만 저는 소설의 현 상태, 그리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봅니다. 책에 관련해서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늘 언제나 독자는 오직 한 명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소설은 특별한 힘을 지니며, 제 견해로는, 그래서 소설이라는 형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소설은 작가와독자가 동등하게 기여한 협업의 결과물이며, 낯선 두 사람이 지극히 친밀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영원히 아는 사이가 되지 못할 사람들과 평생 대화를 나눠 왔으며, 앞으로도, 숨이 멎는 날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제가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폴 오스터,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中


스포츠 팬에는 두 부류가 있다. 응원팀을 바꿀 수 있는 팬과 영원히 바꾸지 못하는 팬.

연고지 이전으로 응원팀을 잃은 두 작가, 필립 로스는 전자였고 폴 오스터는 죽는 날까지 메츠 팬으로 남았다.


연고지의 이전, 좋아하는 선수의 이적, 응원팀의 사건사고, 우승에 관한 갈망, 절대 바뀌지 않는 응원 팀의 상황 등 응원 팀을 바꿀 합리적인 이유나 비합리적 이유는 무수히 많다.

연고지 이전 같은 특수한 사례가 아니면 응원팀을 바꾸지 않는 팬들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대를 이어 같은 스포츠팀을 응원하는 사례도 국내에서 이제 찾기 흔하다.

대를 이어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한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


보스턴 레드삭스, 시카고 컵스, 한신 타이거스, LG 트윈스처럼 우승의 한을 겨우 풀게 된 팀이나 한화 이글스처럼 33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팬에게는,

힘든 세월 버텨 맛보는 우승은 인내가 긴 만큼 그 기쁨도 크다.


86년만에 우승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나이키 광고


뉴어크 공공도서관 2층에는 필립 로스가 기증한 개인 소장품을 전시한 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말년에 양키스 팬으로 전향한 로스의 야구 모자가 있다.

죽음 앞에 선 로스는 기증을 결정하면서 어느 팀의 모자를 전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메이저리그에서 뛴 선수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때 어떤 모자를 쓰고 나갈지 선택할 수 있다.

로스는 문학의 전당에서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팀, 뉴욕 메츠를 선택했다.

전향을 했지만 추억이 담긴 팀이 가장 소중한 팀이었다.


우리 중 대다수는 이기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스포츠는 우리에게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에 관해 가르칩니다. 무엇보다 져도 괜찮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진다고 세상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스포츠에서는 전쟁과 달리 패자가 승자에게 목이 잘리게 되지는 않으니까요.
(중략)
그것이 스포츠의 위대한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매일 지지만 게임을 계속하는 한 언제나 내일이, 다시 시작할 새로운 기회가 있습니다.
이 패배의 위대한 학교에서 당신이 졌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게임의 판결을 거부하고 위풍당당하게 물러나 홀로 고립을 택하지 않는다면, 낙제하는 일은 없습니다.

폴 오스터, J. M. 쿳시, 《디어 존, 디어 폴》 中


죽을 때까지 우승과 거리를 두던 팀을 응원하고, 연필을 언제나 가지고 다니던 뉴욕의 소년은 53년의 세월이 지나 윌리 메이스의 사인을 받는다. 70대 후반에 이른 야구 영웅 윌리 메이스는 소년이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일화를 듣고 눈물을 훔친다.

소년을 상처입혔고 연로한 영웅을 울린, 우승만큼 오랜 기다린 사인.

오랜 기다림의 열매는 희망을 잃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던 이만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폴 오스터는 알려준다.


53년의 세월이 지나 윌리 메이스에게 사인을 받게 된 일화를 이야기하는 폴 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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