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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by 백수광부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의 작가일까.

누군가는 이렇게 이런 작가라고 말할지 모른다. 집요할 정도로 섹스에 집착하는 작가, 그리고 영미 문학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은 작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섹스는 2023년에 나온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야 빠지고, 작가의 이름을 가리면 일본 작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초고 역시 먼저 영어로 번역하고 그걸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으로 자신의 문체를 만들었다.


물론 하루키는 저런 이미지만으로 속단할 작가는 아니다.

그는 이제 노벨문학상 후보에 매년 거론되는 세계적인 작가다. 그가 처음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보도를 들었을 때는 믿어지지 않았다. 영국의 가디언지에서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설을 다루는 기사를 보고서야 실감이 날 정도였다.

그의 소설이 진지한 문학인가 아닌가를 놓고 독일 프로그램에서도 토론이 벌어졌다.


국내에서 영향력은 어떨까.

90년대에는 하루키의 영향을 받은 작가가 제법 있었다.

어떤 작가는 하루키의 소설을 표절한 사실이 드러나자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 다른 작가는 하루키의 열화 카피라는 말을 들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패러디한 무협 소설 《노자무어》 까지 출간될 정도였다.


"완전한 승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완전한 패배(敗北)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야.”

내가 화산(華山) 정일파(正一派)에서 도사 수업을 할 때 무공이 특출했던 나의 사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도 그 정확한 뜻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일종의 위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호의 무협소설 《노자무어》 中


90년대 이후에도 하루키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 하거나 그가 영미권에서 성공한 방식을 흉내 내는 작가도 있었다.


그 이후에도 하루키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 하거나 그가 영미권에서 성공한 방식을 흉내 내는 작가도 있었다.


하루키의 글 중 선호하는 쪽을 꼽아보자면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두 번째는 단편이다. 하루키는 장편도 많이 쓰긴 했지만 단편에 능한 작가다.

세 번째는 에세이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조금 독특하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쓰지란 생각도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이 세 번째에 속한다.

오래전 친구가 빌려준 <무라카미 라디오>를 읽고 ‘세상엔 이런 글도 있구나’라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 또 다른 표현이 적합할 듯하다. ‘세상에 이런 책도 나오는구나’로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하루키가 여러 매체에 발표하거나 발표하지 않은 잡문(雜文)의 모음이다.

제목부터가 잡문집이기에 의심이 가긴 했지만 문학상 수상 소감까지 한 장에 전부 할애한 것을 보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그의 수상 소감을 읽으면 하루키는 문학상 수상식 관계자들에게 참 사랑받는 작가가 아니겠냐는 생각도 든다. 연설 분량이 짧으니 말이다.

예루살렘 문학상 수상 소감은 이례적으로 분량이 길다.

이스라엘을 비판하기 위한 수상 소감은 세계에 회자되었다.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中


하루키는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스물아홉이 되기 전까지 소설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던 사람이 야구장에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그 소설로 군조신인문학상에 당선이 됐다.

야구장의 일화를 가진 작가가 재능이 없다고 말한다면 기만이다.



하루키가 아니었다면 출간되기 어려웠을 책이다.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면 팔리기 어려운 성격의 글들이고, 그가 아니라면 쓸 수 없는 글의 모음이기 때문이다.

변기 위나 침대 위, 여행길 등지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가볍게 머리를 식히기 위한 독서로도 괜찮다.

책에 집중하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노년의 나이에도 집요할 정도로 섹스와 젖가슴에 집착하는 에로 영감의 심리를 정신 분석하기 위해 읽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나름의 방식대로 편하게 즐기면 된다. 그러라고 쓴 잡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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