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빌리 필그림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시간을 여행한다고 말했다. 트랄팔마도어라는 외계 행성에 몇 년 동안 납치되었다고 주장했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에 미쳐버렸을까.
인간은 전쟁을 만들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한 병기를 만들고 돈과 시간을 들여 노력했다.
바다를 가로질러 인간을 죽인다. 바닷속에 들어가서도 인간을 죽인다.
하늘을 나는 기적을 낳았지만 역시 인간을 죽인다.
더 높게, 더 깊게, 더 멀리, 더 빠르게, 더 많이 병기를 만들어 부지런하게 인간을 죽인다.
어쩌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인간을 증오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무한하기 이를 데 없어 초와 비누도 새롭게 발명했다.
새로운 초와 비누는 ‘유대인과 집시와 동성애자와 공산주의자’들 같은 국가를 위협하는 적들의 지방을 녹여 만들었다. 오직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기적이다.
하늘을 나는 기적이 인간을 증오하던 섬나라에 빛을 낳았다.
독일의 드레스덴에도 연합군의 기적이 들이닥쳤다. 그곳의 많은 빛들은 더욱 힘을 내어 히로시마의 두 배를 넘는 135,000명을 삼켰다.
드레스덴은 하나의 거대한 화염이었다. 이 하나의 화염이 유기적인 모든 것,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삼켰다
다음날 정오가 되어서야 걱정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미국인들과 경비병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연기로 시커멨다. 해는 약이 바짝 오른 작은 핀 대가리였다. 드레스덴은 이제 달 표면 같았다. 광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돌은 뜨거웠다. 그 동네의 다른 모든 사람이 죽었다.
뭐 그런 거지
《제5도살장》 中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도 벌 하나 없다. 찻주전자를 훔친 전쟁영웅 한 명만 재판에 부쳐 총살당했다. 뭐 그런 거지 So it goes.
빌리 필그림은 드레스덴에서 살아 돌아온 전역 군인이다. 저자 커트 보니것도 드레스덴의 폭격을 겪은 전역 군인이다.
빌리 필그림은 드레스덴이 달이 되는 모습을 보았다. 달에는 사람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묘사하는 리얼리즘 문학은 이 초현실적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작가 커트 보니것은 SF라는 도구를 택해 트랄팔마도어 행성에 납치되었다는 빌리 필그림의 시간 여행을 비순차적이며 파편적으로 그린다.
작품에서 되풀이하는 ‘뭐 그런 거지’라는 문장은 죽음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은 없고 죽음은 너무 많다.
트랄팔마도어인은 주검을 볼 때 그냥 죽은 사람이 특정한 순간에 나쁜 상태에 처했으며, 그 사람이 다른 많은 순간에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도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그냥 트랄팔마도어인이 죽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을 한다. '뭐 그런 거지.'
같은 작품 中
전쟁 중 좋은 사람도 영웅도 죽는다. 어른도 아이도 남자도 여자도 죽는다. 침략자도 저항자도 군인도 민간인도 죽는다. 전쟁 앞에서 죽음은 평등하다.
"틀림없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었던 척할 거예요. 영화라면 프랭크 시낸트라와 존 웨인, 아니면 다른 매력적이고 전쟁을 사랑하는 추잡한 늙은 남자들이 두 사람을 연기하겠죠. 그럼 전쟁은 그냥 멋지게 보일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또 많이 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 전쟁에 위층에 있는 애들 같은 어린 아이들이 나가 싸우게 되겠죠."
(중략)
"내 명예를 걸고 말하는데 , 거기에는 프랭크 시낸트라나 존 웨인이 맡을 역은 없을 겁니다.
이렇게 하죠. 거기에 '소년 십자군'이라는 제목을 붙이겠습니다."
같은 작품 中
《제5도살장》의 부제는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죽음과 추는 억지 춤 Or The Children's Crusade: A Duty-Dance with Death'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전쟁은 인간성을 앗아가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현실과 비현실, 초현실을 넘나들며 논리적인 사고가 끼어들 틈도 없다.
다시 말하자면 ‘그냥 내가 본 것만 전하기만 하면’ 되는 이야기로는 '나'는 드레스덴에 관한 말을 하기 버겁다. '지금도 말이 별로 나오지는 않는다.'
살아남은 자는 슬프다. 흘러가지 못한 슬픔은 고인다.
그래서 '나'가 아닌 빌리 필그림이 필요했다. 그가 드레스덴의 참상을 겪는다. '뭐 그런 거지'라고 반복하며 슬픔은 이제 흘러간다.
참상을 겪은 정신은 시간을 넘나들며 파편적으로 분열한다. 비극적 현실을 해체한다.
그리고 전쟁이 남긴 상처를 블랙코미디로 승화한다.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바꾸고 싶은 빌리 필그림의 묘비명이야말로,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은 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역설한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같은 작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