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삼킨 아이들

영화 〈어둠의 아이들〉

by 백수광부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태어나는 나라다.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높지 않고, 사회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다른 국가에 태어나 읽고 쓰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20세기 초 태어난 에이브러험 링컨이 어렸을 때만 해도 일하지 않고 책만 읽는다며 부친에게 맞았던 기록이 남아 전해 내려오니, 21세기의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도 복이라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굉장히 열악한 곳이라면 밥을 제때 먹고 잠을 편안한 곳에서 잘 수도 없다.

분쟁 지역에 태어났다면 천수를 다하기 전에 죽거나 소년병이 되어 언제 죽을지 모를 공포에 시달리며 전장에 내몰릴지 모른다.

많은 아이는 단순히 태어난 장소가 다른 이유 하나만으로도 행운의 별 아래에 태어난 아이와 달리 불행을 겪는다.

성인이라면 환경을 바꿀 기회라도 자신이 만들어 나가겠지만 아이들은 그 기회가 적고 능력도 부족하다. 그러니 아이들의 운명은 성인들에 의해 가끔 바뀐다.


갑자기 웬 환경 이야기일까.

<어둠의 아이들>이 다루는 소재가 바로 태국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다루는 아이들은 돈에 의해 팔려 가 어른들의 쾌락을 만족시키는 도구다.

또한 산 채로 심장이 떼여 장기를 제공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살아있을 때는 더러운 욕망에 시달리고 죽을 때마저도 인간다운 대접은 커녕 쓰레기봉투에 담겨 버려지고 있다.

아이들은 동물처럼 철창 안에 갇혀 먹고 지내다 병에 걸려 변변한 치료도 못 받고 죽는다. 탈출을 시도하거나 어른들에게 저항하며 말을 안 들으면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인권이란 저 바깥의 풍경처럼 먼 단어다.

자라나 어른이 된다는 상상도 사치다.

가난한 부모로부터 어린아이를 산 뒤 돈을 벌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어른,

자신의 쾌락을 위해 아이를 사는 어른, 타국의 아이가 죽을 수도 있지만 자기 아이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외면하는 어른, 이러한 사실을 보도하려는 어른, 이러한 일을 막으려는 어른.

영화는 아이들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 어른들의 이야기다.

어른들이 만든 착취의 구조에 아이들은 괴로워한다. 또 다른 어른들은 이런 끔찍한 현실을 해결하려 하지만 이 구조는 단단하기 그지없어 여간해선 깨뜨리기도 힘들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도 같다.


사카모토 준지라는 이름의 어른은 <어둠의 아이들>로 이 전쟁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직업이 영화감독인 그가 든 무기는 카메라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많이 보이는 인물은 물론 어른들에 의해 고통받는 아이들이다. 잦은 클로즈업과 시점의 전환을 사용해 아이들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종종 아이들의 시점 또는 어른의 시점으로 클로즈업한다.

폭력적인 성행위는 행위를 보여주기보다는 관객으로 하여금 짐작하게 에둘러 카메라를 이용한다.

극적인 요소로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거나 감정을 전달하려 하지도 않고, 억눌린 감정을 영화 내에서 쏟아내며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관객에게 불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며 감정의 처리는 관객에게 맡길 뿐이다.


그리고 두 명의 태국인이 있다.

이 아이는 장기가 팔리지도, 불결한 환경에서 죽지도 않고 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리고 쌓여가던 어린 친구들의 시체를 보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게 자신이 당한 소아 성 학대를 강요하며 과거 어른들의 모습과 닮아간다.

또 다른 한 명도 마찬가지로 살아남았다. 아이는 운 좋게도 자원봉사자에게 구출되어 태국의 아이들을 돕는 어른으로 자랐다.

두 아이 모두 영혼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있다. 그러나 자라나 다른 모습이 된 계기는 어른의 개입 유무였다.

어른이 그들의 삶에 어떻게 개입했는지에 따라 미래가 바뀌게 되었다.


2008년 태국은 아동 대상 인신매매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인신매매 방지법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구출되고 있지만 갈 길은 너무나 멀다.


쌓여가는 어린아이들의 시체와 고통을 만든 것은 어른의 욕망이다. 욕망이 괴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괴물이 된 욕망이 아이들을 삼키고 끊어지지 않는 구조를 굳혔다.

주인공 난부 히로유키를 비치는 거울은 관객들에게 아이들을 집어삼킨 어두운 욕망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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