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기의 《법의 체면》
법정. 갈 일이 없는 장소다.
민사 사건도 아닌 형사 사건으로 간다면 어떨까. 또 형사 사건에 본의 아니게 휘말린다면 어떨까.
매체에서 재판을 접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법정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래 전 화제가 된 사건 때문에 실제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분위기는 어떤지, 검사와 판사는 어떤지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방청을 한 적이 있다.
그 사건은 사실 기소를 하는 것이 코미디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까지 상소를 해 무죄를 받은 사건이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검사의 지각, 무신경함, 인수인계 받은 사건의 정보 미숙지였다.
신성한 법정의 방청석에 앉았지만 재판이 제시간에 시작하지 않았다. 검사가 지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증인을 불러 잘못된 신문을 해 증인, 피고, 판사, 방청객, 본인의 시간을 낭비했다. 인수인계 받은 사건 역시 세세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
종합해 보자면 사건을 인수인계 받은 검사는 많은 업무에 치여 법원과 법원 사이를 바쁘게 오가고 그로 인해 재판에 중요한 세부 사항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과중한 일에 파묻혀 있는데 재판 하나를 더 떠안은 셈이었다.
매체에서 보던 검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재판은 그에겐 가장 중요한 재판이 아니었고 중간에 떠맡은 일이었다. 하지만 피고에게도 그럴까. 평일 낮, 화제가 되지 않았다면 방청객도 거의 없었을 재판. 피고에게 중요한 정보들은 수사 과정에서 배제되고 재판정에 선다.
무신경함에 의해 혹시라도 땅, 땅, 땅. 유죄가 선고된다면? 피고에게는 인생이 바뀌는 일이다.
고등법원 또는 대법원에서 무죄로 가려지더라도 그 동안 소요된 돈과 시간, 잃어버린 평판은 적지 않다. 프리랜서가 아닌 직장인이라면 법원에 매번 출석하는 것도 고역이며 유죄라도 선고되면 끝이다.
《법의 체면》은 판사 출신 작가 도진기의 단편소설집이다.
표제작인 〈법의 체면〉을 비롯해 〈당신의 천국〉, 〈완전범죄〉 는 판사로 재직했던 본인의 경험을 살린 미스터리, 추리소설들이며 〈애니〉, 〈행복한 남자〉, 〈컨트롤 엑스〉는 SF 단편들이다.
판사란 옷을 벗어던진 작가가 바라본 재판관은 어떨까.
판사는 그 모습을 보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큰 잘못을 저지른 죄인이지만 통 크게 '용서'해 주엇다. 피고인은 나에게 크게 고마워하고 이제 다시 음주 운전 따위는 꿈도 꾸지 않는 새사람이 되겠지. 판사의 얼굴에는 자신이 좋은 사람 노릇을 했다는 만족감이 번져 있었다.
〈법의 체면〉 中
작가의 말에서 '판사들한테 멱살 잡힐 글'이라 회고하는 〈법의 체면〉과 〈완전 범죄〉는 작가가 판사였을 때 느낀 감정을 작품으로 잘 빚었다. 일회성의 재판 방청임에서도 법을 모르는 내가 부조리함을 느꼈는데 20년 동안 판사였던 이는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을까. 재판은 법리로 판단하지만 판사라는 개인의 주관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 주관에 의해 인생이 바뀐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지만 작가는 작품으로 그 뜻을 드러내기에 기대를 하며 읽었다.
〈완전 범죄〉는 현시대에 맞는 흥미로운 단편이고 〈법의 체면〉 역시 표제작으로 손색이 없다.
〈당신의 천국〉은 결말을 초반부터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단점이다.
도진기라는 작가는 추리, 미스터리 작가로 알고 있었기에 〈애니〉, 〈행복한 남자〉 같은 SF는 다소 의외였다.
〈컨트롤 엑스〉는 구매한 전자책에서는 저작권 문제로 제외되었다.
〈애니〉와 〈행복한 남자〉는 단편집에서 연이어 실려 단점이 두드러져 보였다. 두 작품을 같이 읽으니 캐릭터를 만들 때 유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반면교사로 삼을 작품이다.
국내에서 추리소설로 평판이 높은 작가이기에 기대가 컸다. 기대에 비해서는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또 다른 장편과 단편집을 보면 판단이 설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