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의《명인》
2016년 3월 구글 딥 마인드가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대국이 벌어졌다.
체스보다 더 복잡한 두뇌 게임인 바둑을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잘 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알파고가 두었던 기보를 살펴본 바둑 기사들이나 전문가들도 역시 이세돌의 승리를 점쳤다.
흥미로운 이벤트라는 생각도 잠시,
대국이 열리자 세상은 뒤집혔다.
알파고가 승리했다.
1국도, 2국도, 3국도 알파고가 승리하자 전패에 대한 불안한 예측이 돌았다.
그럴만했다.
쉽게 이기리라 생각한 알파고는 너무나 강했고 이세돌은 무력했다.
사람들은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그의 말로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알파고는 망치로 부숴야만 이길 수 있는 절대강자로 보였다.
4국에서 이세돌은 예상외의 수로 알파고의 오류를 유도했고, 이 전략은 들어맞아 승리로 이어졌다.
전체 5판 중 유일한 승리였다.
인공지능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준 승부였다.
그리고 바둑계는 알파고와의 대결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인공지능과 바둑을 두고, 인공지능이 낸 길을 보고 따라간다.
바둑이 예술이라는 믿음은 사라지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명인》은 은퇴를 앞둔 ‘불패의 명인’ 혼인보 슈사이와 파죽지세로 그에게 도전하는 오타케 7단의 마지막 승부를 다룬 바둑 소설이다.
오타케 7단의 모델은 우칭위안과 함께 ‘현대 바둑의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신포석을 창시한 기사 기타니 미노루다.
가와바타가 취재했던 혼인보 슈사이의 은퇴 기념 대국을 소재로 예도를 지키는 혼인보와 신시대의 기수 오타케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끝내기를 보노라면 예민한 기계, 예리한 수리가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 같고, 또한 질서정연한 미적 감각이 유쾌하다. 싸움이라 해도, 아름다운 형태로 나타난다. 더 이상 곁눈질도 하지 않는 기사가 아름다움을 배가시킨다.
흑 177부터 180 즈음에서 오타케 7단은 무언가 자신에게 넘쳐나는 사념에 황홀해진 듯, 동그스름하니 너그러운 얼굴이 완전무결한 부처의 얼굴로 보였다. 예도의 법열에 들어섰는지, 형용할 수 없이 멋들어진 표정이었다.
《명인》 中
화자는 대국을 관전하는 기자인 ‘나’, 우라가미다.
흥미로운 부분은 작품의 주인공이 혼인보라는 사실이다.
가와바타(1899년생)에게 기타니 미노루(1909년생)를 모델로 삼은 서른 살의 오타케가 더 비슷한 나이인데 왜 예순다섯 살의 혼인보가 주인공일까.
가와바타는 평생에 걸쳐 일본 고유의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그를 표현했다.
그는 ‘진정한 바둑이 일본에서 이루어졌’고 일본에서만 ‘훌륭하게 발달’했다 생각한다.
따라서 그에게 일본 정신의 정수는 바둑이고 예도의 수호자는 불패의 명인 혼인보다.
또한 가와바타의 작품에서 죽음은 빠질 수 없다.
가족을 비롯한 친인척들이 어린 시절부터 죽고 약한 몸으로 자라 요절에 대한 두려움이 언제나 있었다. 죽음은 언제나 그를 따라다녔다.
가와바타의 세계에서 죽음 앞에서도 예도를 지키고 질서를 관철한 혼인보와
욱일승천의 기세로 구습을 깨버리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젖히는 기타니 중 어느 쪽이 더 가까운지는 자명하다.
나는 봉투 안의 사진을 꺼내 보자마자, 아아하고 명인의 얼굴에 빠져들었다. 사진은 아주 잘 나왔다. 살아서 잠이 든 듯 찍혔고, 더욱이 죽음의 고요가 감돌았다.
같은 서적 中
죽음을 맞이한 명인의 평화로운 얼굴과 죽음의 고요는
가와바타에게 다가올 가깝고도 먼 미래이자 그의 지향이기도 하다.
여성을 그리거나 여성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부분은 매우 적다.
변태스러울 정도로 집착하는 시선이 여성에서 바둑으로 옮겨간 탓이다.
“이 바둑도 끝장입니다. 오타케 씨의 봉수로 엉망이 되고 말았어요. 애써 그리고 있는 그림에, 먹칠을 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나직하지만 격한 어조였다.
“그 수를 봤을 때, 나는 그만 던져 버릴까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라는 의미에서...... 던지는 게 낫겠다 싶었지요. 하지만 결심이 서지 않아,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같은 서적 中
예도는 오타케의 신포석에 의해 무참하게 깨어진다. 고아한 정취는 쇠하고, 합리주의로 유린당한다.
혼인보는 승부보다 ‘애써 그리고 있는 그림’에 더 관심이 많다.
‘나’, 역시 승부보다 명인과 그가 ‘애써 그리고 있는 그림’에 마음이 기울고 그렇기에 ‘나’는 대국에 임하는 명인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린다.
가와바타는 우칭위안이 세속적 고난이 없고, ‘바둑의 천재가 명인을 뛰어넘었다 하더라도 그 개인이 역사 전체를 드러내는 일은 더 이상 없으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알고 있다.
오타케 7단의 모델이 되는 기타니 미노루와 함께 우칭위안은 현대 바둑의 기틀을 마련한 창시자로 역사에 남았다. 가와바타의 벗 세고에 겐사쿠의 제자, 조훈현은 한국으로 돌아와 그 기량을 꽃피우고 또 다른 제자를 길렀다.
인공지능이라는 합리주의는 바둑을 영원히 바꾸어 버렸다.
바둑이 예술이라고 믿을 수 있었던 시대,
알파고라는 합리주의와 맞섰던 이세돌의 모습에서 마지막 바둑을 완성하려던 혼인보가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