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욱의 《동정 없는 세상》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은 아이는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 아이는 이전의 모습과는 다르다.
아이는 고통을 겪으며 어른으로 성장한다.
어른이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있긴 하다.
죽음으로 성장이 멈추어 타인의 기억 속에서 영원한 젊음을 사는 것이다.
이런 비극을 겪는 이는 소수이며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통과 의례를 거칠 수 밖에 없다.
이 땅의 아이들은 모두 겪는 일이다.
과거 농업 사회에서는 들돌이란 의식으로 아이가 무거운 바위를 들 수 있게 되면 일을 할 수 있는 어엿한 어른으로 인정받았다.
원시 사회에서는 야생동물의 사냥이 통과 의례가 되었고, 유교 사회에서는 관례를 통해 어른이 되는 의식을 치렀다.
고도로 발달한 21세기 대한민국의 통과의례는 무엇인가.
현대 사회에서는 커다란 돌을 드는 완력이 성인의 기준이 아니다. 사냥에 필요한 전사가 딱히 필요하지도 않다. 공맹을 논하는 더벅머리 선비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커다란 돌도 맹수도 아스팔트의 도시에서 찾기 힘들다.
글을 읽을 줄 아는 현대 사회에서는 성인이 되는 방법이 다르다.
만 19세가 되면 성인이 되어 사회에 들어서게 된다.
청소년의 성인식 중 하나는 ‘성(性)’ 즉 섹스다.
종족 번식이 물론 성인에 이르는 길은 아니다.
막 사회에 진입하는 아이들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 알맞은 역할을 알 리가 만무하다. 이제는 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어른 되기’는 농사꾼, 전사, 유학자라는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청소년들은 그들 나름의 성인식을 만들 수밖에 없고, 치기 어린 마음이나마 그들이 생각한 성인식은 섹스였다.
물론 이러한 통과 의례를 거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동정의 딱지를 떼어 또래보다 우월해졌고 무언가 달라졌다는 생각만이 남는다.
《동정 없는 세상》은 청소년이 인식하는 ‘성인식’인 성(性)이라는 소재를 통해 성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려내는 성장 소설이다.
주인공 준호는 수능시험을 친 이후 그의 여자 친구인 서영이와 오직 한번 할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맨 처음 나오는 문장이 ‘한번 하자’일 정도다.
준호가 동정 떼기로 절로 어른이 될 리는 없다.
삼촌인 명호 씨의 사업 준비, 친구들의 취직 등 그를 둘러싼 세계가 변하자 자신도 변해야 함을 느낀다.
이 불안감은 끊임없이 숙경 씨와 명호 씨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표출된다.
‘동정(同情) 없는 세상’. 즉 어른 되기는 자신의 홀로서기다.
성장을 위한 욕구는 준호가 원하던 일인 계속해서 쉬는 행위로 한층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사람은 대개 어린 시절 어서 어른이 되길 바란다.
깊은 밤 재미난 프로그램을 보려고 할 때마다 어른은 어서 자라고 재촉한다.
군것질을 마음껏 하려 해도 어른이 방해한다.
아이는 어서 어른이 되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마음껏 보자는 결심을 하며 잠자리에 든다.
하루하루 커가는 자신의 키를 확인하며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어서 어른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다.
그러나 아이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 두려움은 사회에 한 발짝씩 다가가며 더 커진다.
준호가 사회적으로 성인으로 인정해 주는 ‘대학생’이 되기 직전인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신분은 그러한 두려움을 반영하는 설정이다.
보호받던 처지에서 벗어 자신을 홀로 먹여 살리고 나아가 한 가족을 만들며 다시 그 가족과 함께 사회에 선다.
더 이상 그를 보호해 줄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20년을 자유롭지 못하게 살다 갑자기 자유를 준다면 그 아이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되는 시간의 흐름을 멈출 방법은 죽음뿐이다.
준호는 더 이상 청소년으로 남아있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면 섹스를 하는 것도 사실은 두렵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물이 되는 그 자체가 두렵다. 스물이 되어봤자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그냥 이대로, 언제까지나 열아홉일 수는 없을까.
《동정 없는 세상》 中
준호는 어른이 되기 두렵다. 두려운 이유는 그가 아는 두 어른, 미혼모 숙경 씨와 백수 삼촌 준호 씨가 사는 세계가 핑크빛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준호는 삼촌을 존경하고 삼촌을 닮고 싶지만 백수인 삼촌의 처지를 닮고 싶지는 않다
이제 막 어른이 된 청소년은 사회라는 미궁 안에서 헤맬 수밖에 없고, 그 사회는 일방적으로 질주만이 가능한 아우토반도 아니다.
세계에 대한 준비가 갖춰져야 하나의 성인으로 홀로 설 수 있다.
명호 씨는 그러한 세계에 대한 준비로 ‘인문학의 공부’를 제안하고 준호는 이를 받아들인다.
인문학 공부가 ‘성인 되기’의 준비라니 정말로 글쟁이 같은 해결책이다.
불안한 준호에게는 이 역시 동아줄이다.
숙경 씨나 준호 씨는 다소 비현실적이다. 어른으로 등장하는 두 캐릭터 모두 너무 쿨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어른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어른이 된 우리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아이에게 어떤 답을 들려줄 수 있을까. 작품을 읽으며 곱씹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