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라는 도전자

이만교의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

by 백수광부



1997년 말에 일어난 외환위기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평생 고용의 신화가 사라졌다. 한평생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자본이 난도질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절망해 목숨을 버렸다.

실업, 이혼, 부도, 야반도주, 자살, 사기, 폭력, 생계형 범죄, 입대, 자퇴, 휴학이란 단어들이 어느 때보다 늘어났다.

그런 소식들이 매일 들려왔다.


경제 위기의 파도가 가정을 덮치자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위해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일을 구해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밥상 위에 놓인 숟가락의 수도, 웃음소리도 줄었다.

기업이 무너지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가족이 해체됐다.

외환위기는 완전한 가족이라는 개념을 잔인하게 해체하고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외환위기를 다루는 소설도 많다.


소설이 독자를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사로잡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야기다.

이야기로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 뛰어난 작가는 대개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머꼬네 집에 놀러올래>는 이러한 이야기로 이끌어가는 소설이다.


‘나’, 즉 머꼬네 가족구조는 전형적인 대가족이다.

할아버지는 노비였지만 일제강점기에 풀려나 농사꾼과 술꾼으로 살다 죽었다.

경제발전기에 댐으로 고향이 수몰되어 고향을 떠나게 된 아버지는 목수로 떠돌다 병들어 죽었으며 어머니는 공장에 나가면서 네 남매를 키워냈다.

형은 일류 대학을 나온 운동권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대기업에 취직했고,

큰 누나는 공장에서 번 돈으로 동생들을 공부시킨 후 남편을 만나 고깃집을 하고 있다.

작은누나는 고등학교만 졸업 후 취직하고 화자인 ‘나’는 전역 후 어학연수를 준비 중이다.


전형적인 가족구조에서 이들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독재, 광주, 그리고 외환위기까지 대를 이어 현대사의 사건들을 겪어나갔다.

외환위기는 여태 겪어보지 못한 거대한 위협이었다.


소설에서 만들어가는 머꼬네 가족사는 이 위협에 대한 이야기다.

욕망은 곧 부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다시 말하지만 외환위기는 현실의 완전한 가족 형태란 개념을 찢어놓았다.

완전한 가족 또는 환상적인 가족의 이야기는 불안하고 문제가 많은 가족 관계의 현실을 감추거나 가리는 환상이다.

그러니 머꼬네가 만들어가는 가족사는 외환위기에서 가족 관계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이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할머니가 기억하시기를 사흘 걸러 하루씩 할아버지는 술에 만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 기억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것이, 옆에서 듣던 친척이나 이웃들이 반드시 대꾸했다는 것이다.

“사흘이 뭐여? 이틀이 멀다 하고 마셨지!”

그러면 그 옆 사람이 또다른 증언으로 가세했다.

“이틀이 뭐여? 매일 온종일 취해만 있었잖어!”

주변 사람들 말이야말로 그러나 하나도 믿을 게 못 되었다. 바로 코앞에서 그렇게 말해놓고도 다시 화제를 할아버지가 지서에 끌려간 쪽으로 바꾸면

“아이고, 한 해에 한 번이 뭐여? 동네에 무슨 일 날 때마다 잡혀들어갔지!”

그러면 받아서.

“아예 매일같이 지서에 들어가 살았지, 뭐!”

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마을 사람들 기억 때문에 점차 우리 할아버지는 한 사람이기보다는 전혀 다른 여러 사람의 모습을 일컫는 일종의 보통명사처럼 들렸다. 우리 할아버지라는 이름은 위대한 애국자 혹은 어리석은머슴꾼, 몹쓸 술주정뱅이, 평범한 농사꾼, 기운 센 장수, 불씽힌 겅차가, 항일의병 등등 참으로 천차만별의 여러 모습으로 나뉘어 회자되었고, 그 바람에 우리 할머니가 아주 많은 서방을 거느리고 살았구나, 싶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아예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변신술에 워낙 능한 양반이어서 일본 순경들도 쩔쩔매었다.”

⟪머꼬네 집에 놀러올래⟫ 中


십여 명에 달하는 가족사라는 내부의 서사만으로는 외부의 위협을 극복하기에 부족하다.

이야기하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이야기는 가볍기 그지없다. 때로는 초현실적이다.

그러나 12라운드를 넘어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를 버텨야 하며, 한번도 본 적 없는 체급의 도전자를 상대하는 복서가 진지하지 않다고 비난할 사람은 없다.

우리가 보고 내딛는 발은 외환위기라는 현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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