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신타로의 소설《태양의 계절》
이시하라 신타로(1932~2022)는 전 도쿄도지사이자 망언으로 유명한 일본의 극우 정치인이었다.
1955년에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최연소(23세)로 수상한 작가로 유명했다.
최연소 수상자란 기록은 현재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으로 2003년 수상한 와타야 리사(당시 19세)가 가지고 있다.
이시하라 신타로의 《태양의 계절》은 부유한 청년들의 방탕하고 반항적인 생활을 그려내어 일본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듬해 영화로 제작되어 흥행에도 성공했다.
'태양족'은 이 작품에서 유래한 용어로,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쾌락적 문화를 추구하는 1950년대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당시 젊은이들은 이시하라 신타로나 영화 《태양의 계절》의 주연배우였던 그의 동생 유지로를 흉내 내 선글라스에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신타로가리'라 불리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녔다.
문학 작품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작품과 세월의 모래에 묻혀 그 가치를 느끼기 어려운 작품이다. 전자를 우리는 고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후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태양의 계절>은 시간의 모래에 묻혀가는 건축물이다. 작품이 발표된 55년에는 신선한 문제 작이었지만 70년이 지난 현재는 전혀 새롭지 않다. 더 자극적이거나 신선한 문제작은 문학이라는 공동묘지에 너무나 많다. 새롭게 번역이 될 때마다 무덤을 박차고 일어나는 좀비를 우리는 여럿 알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좀비인 다자이 오사무나 근래 새롭게 번역본이 나오고 있는 미시마 유키오, 오에 겐자부로 등이 그들이다.
강간, 연인 교환, 연인 권리를 돈 주고 팔기, 낙태, 일본식 장지문을 발기한 페니스가 뚫어버리는 묘사 등은 발표된 연도를 생각하면 파격이다.
그러나 파격 이외에는 다른 가치를 찾아보기 힘들다. 문학적 형상화도 뛰어나지 못하며 문장도 좋지 못하다. 묘사도 단조롭기 그지없다. 이야기의 재미도 없다. 50년대 당시 젊은이들의 폭력과 성을 그리는 풍속 소설에 그친다.
매우 좋지 않은 번역도 한몫하고 있다.
겐자부로를 겐사부로로, 슌타로를 준타로로 오역하며 일본식 표현 또한 그대로 직역했다.
오탈자, 비문 등의 오류를 포함하면 여태 읽은 번역서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문제가 있는 번역이다.
국내 번역본에서는 <태양의 계절>과 함께 축구 경기가 배경인 <빼앗길 수 없는 것>을 싣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축구 포지션은 현대 축구가 아닌 50년대의 포지션이다.
당시 축구는 널리 쓰이던 WM 포메이션이나 전통적인 2-3-5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CH(센터하프)는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와 유사한 역할의 포지션이다.
양 아웃사이드 포워드와 중앙 공격수 사이에 있는 IL(인사이트 레프트 포워드), IR(인사이드 라이트 포워드)은 현재는 사라진 포지션이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가. 일반적인 독자라면 알지 못한다.
설령 축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도 축구 전술의 역사를 모른다면 알기 힘들다.
그럴 때 필요한 주석이 없다.
원서도 문장이 좋지 않다는 말이 많은데 번역이 이러하니 점입가경이다.
<빼앗길 수 없는 것>을 읽으면 남자 작가가 오래된 소설이라는 인상이 더 강해진다.
주인공 기시마가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보고 그를 결혼 상대로 택하지 않았던 요코의 후회나 집착, 그리고 요코를 보고 질투하는 기시마의 부인을 그린 모습은 그 심리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고 문장이 조악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작가 이시하라의 판타지만이 보인다.
단행본에 실린 두 작품 모두 문제는 동일하다.
한국의 5~60년대 문학처럼 방황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유예된 청춘을 그린다.
파격적이고 선정적이지만 50년대 일본 젊은이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전부다.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젊은이를 그리면서 문학적 형상화가 뛰어나다면 고전이 될 가치가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없다.
아쿠타가와상 심사 당시에도 작품이 지닌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젊음이 넘치는 에너지가 높이 평가되어 최연소 수상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70년이 지난 지금 소설은 더 이상 젊지 않다.
태양처럼 빛나는 젊은이는 태양이 저물고 추한 기록만이 바다 건너 전해지다 그 수명이 다했다.
태양 같은 줄 알았던 글은 날아오르기도 전에 좋지 않은 문장과 번역이라는 양 날개 때문에 추락했다.
그리고 패기만이 가치인 소설은 시간의 모래에 묻혀 서서히 사라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