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의 기다림

메이저리그에 새겨진 니그로리거

by 백수광부
〈엑스파일〉여섯번째 시즌〈인간이 된 외계인 The Unnatural〉에피소드의 엔딩곡〈Come and Go With Me to That Land 〉

미국 드라마 〈엑스파일 The X-Files〉 시즌 6의 열아홉 번째 에피소드인 〈인간이 된 외계인 The Unnatural〉은 뉴멕시코주 흑인 야구팀에서 활약하던 외계인 야구 선수의 이야기다.


조지아에 살던, 인간과의 교류를 거부하던 외계인의 종족. 그의 종족은 웃지 않기에 웃음이란 단어마저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외계인이 야구를 보게 되었다.

배트로 공을 치는 것처럼 야구를 보는 사람들의 미소가 그의 머리를 때렸고, 야구와 사랑에 빠진 외계인은 인간과의 교류라는 일탈을 하게 된다. 외계인은 조시 엑슬리라는 신분의 흑인으로 위장을 하고 그레이스란 이름의 팀에 들어가 야구를 즐기게 되었다.

뛰어난 성적에 뉴욕 양키스의 스카우트 팀까지 경기장에 찾아온다.

외계인은 일부러 부진한 활약을 보인다. 인간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면 안되기 때문이다.

외계인의 야구에 대한 사랑은 멈추지 않았고 그는 계속해서 야구를 통해 인간과 교류를 했다.

베이브 루스가 세운 60홈런을 넘어 61번째 홈런을 때린 순간, KKK단으로 위장한 외계인 사냥꾼이 그를 찾아와 죽인다.

야구의 아름다움과 의미는 다이아몬드의 불변의 기하학적 구조와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민첩성, 힘, 타이밍에 대한 시험에 있었다. 야구는 구장의 모든 좌석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경기였고, 그래서 모든 관중이 저마다 오후 내내 동시에 본 순간의 광경들을 모아 그림 한 장으로 합칠 수 없다면 정확히 전달할 수 없는 경기였다. 또한 거기에는 경기 시간의 절반을 넘는다고 할 순 없지만 거의 그 정도에 육박하는 정적인 순간들, 기다림과 망설임, 준비와 회복의 순간들, 관중의 소음을 포함해 모든 것이 멈춘 순간들처럼 배트에 맞은 공이 유유히 담장을 넘어가는 극적인 몇 초에 뒤지지 않는 야구만의 매력적인 순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필립 로스, 김한영 옮김, 《위대한 미국 소설》, 문학동네, 2020, 153p



외계인마저 사로잡은 야구.

19세기 중반, 야구가 미 대륙에 널리 퍼져 흑인들 역시 야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베이스를 달리고, 공을 던지고, 때리고, 달리는 순간을 즐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백인들은 그들과 플레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백인들은 그들과 섞이길 거부했고 흑인들은 야구를 할 리그가 필요했다.

그래서 니그로리그가 만들어졌다.



니그로리그에서는 흑인뿐만 아니라 중남미, 심지어 극소수지만 여자 선수들까지도 있었다.

백인들의 인종 분리 때문에 만들어진 리그였지만 적어도 리그에서 야구를 할 때만큼은 차별받지는 않았다.



20세기 최초로 메이저리그에서 인종차별의 벽을 깬 재키 로빈슨,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 중 하나로 꼽히는 로이 캄파넬라, 베이브 루스의 통산 홈런 기록을 경신한 행크 애런, 이정후의 소속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전설 윌리 메이스 등 뛰어난 선수들이 니그로리그에서 활약했다.

그중 한 선수는 베이브 루스와 비교가 되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인간이 된 외계인 The Unnatural〉에서는 외계인이 사용하는 '조시' 엑슬리와 그의 소속팀 '그레이스'란 이름으로 모티브가 된 인물을 암시한다.


jgibson_100-scaled.jpg 니그로 리그 팀, 홈스테드 그레이스의 전설적인 타자 조시 깁슨

영어에 능숙하지는 않았기에 니그로리그에 대해 알고 싶어도 자료가 거의 없었다.



조시 깁슨에 대한 정보는



800개에 달하는 홈런,

믿을 수 없는 비거리의 타구,

총알 같은 송구를 날리는 어깨 힘과 흔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하게 공을 잡는 포구 능력 등



베이브 루스와 비견되는 선수가 니그로리그에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렸고 더 구체적인 정보는 알기 힘들었다.



깁슨 뿐 아니라 사첼 페이지, 쿨 파파 벨, 오스카 찰스턴 등 니그로리그 선수들의 자료는 외계인의 행방을 쫓는 것 같았다. 그들의 행적과 경기력에 대한 묘사는 경이롭고 신비롭기만 했다.



그렇게 자료를 찾다 니그로리그의 통계 자료 사이트인 심헤즈



와 스포츠 웹진 디 애슬레틱에서 조 포스난스키 기자가 연재한 칼럼인 ⟨The Baseball 100⟩이 눈에 들어왔다.



⟨The Baseball 100⟩은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100명을 꼽은 칼럼이며 그중에는 니그로리그에서만 뛰거나 니그로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선수들이 있었다.



칼럼에서는 100명에 달하는 선수들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소개한다.



조 포스난스키가 꼽은 열다섯 번째 선수가 바로 조시 깁슨이다.



그를 다룬 칼럼에서도 크게 다른 정보는 없다. 세부 정보를 여럿 제공해 부족한 부분을 메운다. 비거리와 어깨 힘에 대한 기사들, 엇갈리는 수비 능력에 대한 증언, 조슈아 깁슨이 어떻게 조시 깁슨으로 불리게 되었나 등의 이야기로 말이다.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외계인과 같았지만, 조시 깁슨은 외계인과 달리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었다.

그는 외계인이 아닌 인간이다. 피부색이 다르지만 같은 피가 흐르는 인간.

자신의 이름을 알려 메이저리그에서도 인정받고 싶었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0.466의 타율과 109타점, OPS+ 281의 성적을 기록한 1943년, 31세가 되는 해에 뇌종양을 진단받았고, 죽는 날까지 고통과 싸웠다.

야구를 향한 사랑은 그럼에도 멈추지 않아 죽기 한해 전까지 공을 치고, 때리고, 날렸다.



오른팔을 잃고 왼팔로만 플레이하는 피트 그레이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때도 흑인은 메이저리그의 문을 열지 못했다.



조시 깁슨의 홈런은 경이로운 비거리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1946년에도 '백인 선수들이 언급할 정도의 비거리'를 가진 홈런은, 35세가 되는 이듬해에 멈추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해, 한 선수가 인종차별의 벽을 마침내 부수고 뛰어난 기량을 더 넓은 세상에 선보였다.


jackie_100-1024x775.jpg?width=770&quality=70&auto=webp 재키 로빈슨

⟨The Baseball 100⟩의 조시 깁슨 칼럼을 읽은 달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니그로리그의 성적을 공식적으로 메이저리그 통계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니그로리그 성적에 대한 통계 작업이 완료된 4년 후, 조시 깁슨의 성적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단일 시즌 타율(0.466, 1943년), 장타율(0.974, 1937년), OPS(1.474, 1937년) 1위의 성적을 인정받았고

통산 타율(0.371)과 장타율(0.717), OPS(1.175) 1위 역시 그의 몫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들려줄 조시 깁슨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피트 그레이와 같은 해인 1945년, 깁슨은 야구에서 자신이 가장 큰 감동을 받았던 순간에 대한 칼럼을 썼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최장거리 홈런? 사첼 페이지와의 대결? 질주하는 쿨 파파 벨을 저지한 것?

아니다.

그가 가장 큰 감동을 받은 순간은 1941년 푸에르토리코에서 MVP 상을 받았을 때였다. 그는 푸에르토리코를 사랑했다. 그곳에서 받은 대우에 놀랐고, 고국에서 경기할 때와는 얼마나 다른 경험이었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은 그를 영웅처럼 대했다.

하지만 그가 감동한 것은 MVP 상 자체가 아니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시즌이 끝나고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을 받은 일은," 그가 썼다, "인생에서 매우 특별하고 기쁜 순간이었다. 환대와 팬들의 함성, 그리고 리그 관계자들과 여러 인사들의 많은 축사는 내 경력 전체를 통틀어 비할 바 없는 감동을 주었다."

생각해 보라. 아마도 야구 역사상 최고의 포수, 아마도 야구 역사상 최고의 홈런 타자, 아니 어쩌면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던 그가 기억하는 가장 큰 감동이,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축하해준 그 하루였다는 것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There is one final Josh Gibson story to tell. That same year as Gray, 1945, Gibson wrote a column about his greatest thrill in baseball. Think about what that might have been. The longest home run at Yankee Stadium? Facing Satchel Paige? Throwing out Cool Papa Bell on the basepaths?

No.

His greatest thrill in baseball was winning the MVP award in Puerto Rico in 1941. He loved Puerto Rico. He was stunned at how well he was treated there, how different the experience was compared to playing at home. In Puerto Rico, people treated him like a hero.

But it wasn’t the MVP award itself that thrilled him. Read his words:

“Receiving the cup symbolic of the most valuable player award at the end of the season,” he wrote, “was a highly significant and pleasing event in my life. The fanfare, the cheering of the fans and the many congratulatory speeches from league officials and other dignitaries gave me a thrill unequaled in my career.”

Think of that. Perhaps the greatest catcher in the history of baseball, perhaps the greatest home run hitter in the history of baseball, perhaps the greatest player in the history of baseball, and the thrill he remembered was that one day in another place when people celebrated him. “I will never forget it,” he said.

Think of that. Perhaps the greatest catcher in the history of baseball, perhaps the greatest home run hitter in the history of baseball, perhaps the greatest player in the history of baseball, and the thrill he remembered was that one day in another place when people celebrated him.

“I will never forget it,” he said.

Joe Posnanski, 『The Baseball 100』 (p.664-665). Avid Reader Press / Simon & Schuster. Kindle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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