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
혐오를 과학으로 광기를 애국심이라 부르던 시대에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던 동양의 섬나라가 진주만을 폭격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선이 넓어진다.
그림을 좋아하는 한 청년도 전쟁의 포화를 벗어나지 못했다. 소집 영장을 받은 그는 남쪽과 북쪽 중 어느 곳을 택하겠냐는 물음에 단순히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남쪽을 선택, 파푸아뉴기니의 라바울 전선에 배치된다. 라바울에서 수많은 위기를 넘기고 목숨 대신 왼팔을 내어준 청년은 포츠담 선언으로 전쟁이 끝난 일본으로 귀국, 섬나라에서 요괴를 그리는 가장 유명한 만화가가 되었다.
애니메이션 〈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 는 폐간 직전의 잡지를 살리기 위해 한 기자가 폐허가 된 나구라 마을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나구라 마을에서 키타로 가족을 미행하던 기자가 해골 요괴를 마주치자 시대는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6년. 혈액은행에서 근무하는 청년 미즈키 역시 전장에서 돌아온 전역 군인이다. 라바울의 청년처럼 ‘미즈키’라는 성이지만 청년과 달리 왼팔을 잃지는 않았다. 왼쪽 눈에는 흉터가 있고 왼쪽 귓바퀴가 잘리고 왼쪽 가슴에 상처가 있으며 전쟁의 후유증으로 밤마다 악몽을 꾸기도 하지만 왼팔을 잃지는 않았다.
미즈키는 상사의 지시로 류가 일족의 당주 토키사다의 죽음을 조문하고 차기 당주로 유력한 데릴사위 카츠노리에게 인사도 할 겸 나구라 마을로 향한다. 마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미즈키는 한 백발의 남성을 만나 기이한 일을 겪는다.
나구라 마을의 사람들은 이방인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 류가 가문의 데릴사위이자 미즈키의 거래처인 류가 제약의 사장 카츠노리, 도시인에게 흥미를 느끼는 어린아이 토키야, 류가 가문의 미소녀 사요 정도만 그에게 호의적이다.
류가 가문의 저택에서는 당주 토키사다의 유언장이 공개된다. 유언의 내용을 두고 류가 일족은 대립하고, 기괴한 현상에 이어 살인사건마저 벌어진다.
옛 화족이 지배하는 기괴한 분위기의 시골 마을. 유산과 유언을 둘러싼 유족의 갈등. 이방인을 경계하는 일족. 그리고 하나둘 늘어나는 사망자.
익숙한 설정이다. 추리물을 즐겨보는 독자는 알고 있는 ⟪소년탐정 김전일⟫,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이자 김전일의 조부로 알려진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가 이러하다.
특히 작품 초반부 유언장을 발표하는 장면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누가미 일족⟫을 떠올리게 한다.
긴다이치 고스케를 머릿 속에 떠올릴 무렵 요괴 물이라는 요소 역시 이야기에 올라탄다.
미스터리로 시작해 미즈키의 과거, 그리고 진실에 이를 때까지 착실하게 이야기를 쌓아나가는 작품이다.
본격적으로 요괴 물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때는 화려한 액션과 작화를 드러낸다. 요코미조 세이시 풍이라면 좀 더 미스터리 요소를 강화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고, 요괴 물을 기대했는데 웬 요코미조 세이시로 시작하냐고 당황할 수도 있지만 작품 속에서 두 요소 간의 균형을 잃지는 않았다.
라바울의 청년은 보았다.
요괴보다 무서운 인간을. 자살 명령을 안 따르자, 부하들을 사형하는 인간, 정신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믿고 보급 없이 돌격만 지시하는 인간, 줄을 지어 짐승처럼 인간에게 욕망을 해소하는 인간, 타인의 목숨보다 자신의 명예가 더 중요한 인간.
라바울의 청년은 다시 보았다. 광기를 애국심이라 부르고, 야욕을 해방이라 치장하며 욕망을 거짓으로 덧칠하는 지금의 세대를.
라바울에서 돌아와 요괴만화의 거장이 된 고故 미즈키 시게루에게 바치는 작품이 바로 이 〈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다. 미즈키 시게루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작한 미즈키 시게루 세계관의 작품이다.
국내외에서 관객들의 호평이 이어진 이 작품은 최근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에 공개되었다.
미즈키 시게루 탄생 100주년 기념 작품에서 제작진이 생각하는 미즈키 시게루의 유지란 무엇일까? 그리고 나구라 마을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 답은 직접 확인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