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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 : 남자 화장실 퀴즈

남자 화장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by 백수광부

지금은 폐지가 된 TvN 예능 프로그램 〈재밌는 TV 롤러코스터〉에는 남녀탐구생활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와 심리를 비교하는 이 코너는 드라마 〈X-FILES〉의 스컬리와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의 금강, 모바일 게임 〈쿠키런:킹덤〉의 미스틱 플라워쿠키를 연기했던 성우 서혜정의 건조한 나래이션과 정형돈, 정가은의 코믹한 연기가 더해져 인기를 끌었다.



그중 공중화장실 편이 다소 마음에 걸렸다. 그때까지 수없이 많은 공중화장실을 드나들었지만 의식하지 않은 문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손 씻기다.

나는 영상에서 나온 것처럼 정말 사람들이 손을 안 씻는지 궁금했다.

재미를 위해 예능에서 과장 섞인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설마 그렇게 손을 안 씻는지 의심이 들었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고 찝찝함을 만든다.

한 주 정도 공중화장실에 갈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손을 씻는지 관찰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용무를 본 사람 중 7-80%가 손을 씻지 않았다. 볼일을 본 손으로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만진다. 화장실 문을 나서자마자 그 손으로 여자 친구의 손을 잡거나 가방을 대신 들어주었다.

남자를 일반화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협소한 경험에 의한 주관적인 판단이다. 여자 화장실을 갈 일도, 갈 수도 없으니 여자도 그러한지는 모른다.

그 이후 공중화장실에 가면 사람들의 손 씻기 여부를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용변을 본 사람 중 손을 씻는 이는 희소했다.



손을 씻더라도 난감한 경우가 있다.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고체형 비누가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사실 고체형 비누라도 손을 씻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균이 사라진다고 한다.

고체형 비누가 비위생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손 씻기를 기피한다는 얘기도 있다. 공중화장실의 고체형 비누가 변기 물보다 지저분하다는 뉴스는 이런 인식을 부채질했다.

손을 씻는 이들은 고체형 비누보다 액체형 비누를 더 선호하고 이런 인식을 반영해서인지 액체형 비누는 빠르게 공중화장실에 비치되는 중이다.



고체형과 액체형 비누에 대한 선호와 기피도 때로는 사치다.

공중화장실에 있는 고체형 비누가 새것이다. 공중화장실에 있는 쪼그라든 고체형 비누가 있다. 두 화장실의 비누가 그 상태로 몇 달간 있다. 공중화장실에 비누가 없다.

여름철 괴담이 아니다. 현실이다.

공중화장실 뿐 아니라 일반 매장의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대체 왜 화장실에 비누가 없거나 형태는 그대로일까.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이 남녀탐구생활과 화장실에서의 관찰 덕분에 풀렸다. 손을 씻지 않으니 비누가 필요하거나 줄어들 리가 없다. 여자 화장실의 상황은 모르니 그곳의 비누가 어떤지는 모른다. 중세에 손 못 씻어 죽은 유령이 화장실의 생명들을 지켜본다면 당황하지 않을까. 손 씻기를 경원시하는 이가 이리도 많으니 말이다.



조국의 위생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드는 분들을 위해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보았다.



작년 조사에 의하면 성인 중 용변 후 손을 씻는 비율은 76.1%,

비누를 사용해 손을 씻는 비율은 31.8%라고 한다.

남녀의 비율이 나오지 않은 관찰조사지만 고무적인 결과다. 주관적 경험보다는 더 신뢰가 간다.



조금 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겠다.

2020년, 팬데믹 시대가 도래하자 남자 화장실에도 변화가 생겼다.

중요한 변화다.

없던 비누가 비치되고 비누가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침투를 한치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듯 손을 씻고 또 씻었다.

남자 화장실의 손 씻기 실태를 걱정하던 유령도 성불할 변화였다.

팬데믹은 불행이지만 손 씻기란 습관은 오랜 기간 정착되기 시작했다.

대소변을 보고 비누칠을 한 다음 물로 손을 꼼꼼하게 씻는다. 루틴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화된 손 씻기가 호흡기 질환을 예방했다.



팬데믹이 끝나면서 화장실에 유령이 돌아왔다. 손 안 씻는 유령이. 코로나바이러스의 교훈 때문에 전보다는 비누가 늘거나 형태가 바뀌었다. 정착된 습관으로 손 씻는 남자도 늘었다. 관찰에 의하면 비율이 조금 더 늘었다.

습관은 중요하다.



공중화장실에서 액체형 비누를 사용해 손을 씻는다. 축축한 손을 핸드 드라이어로 말리니 뽀송해진다. 당겨야 열리는 화장실 손잡이. 손잡이가 축축하다.

이제 질문을 던져보겠다. 손에 묻은 액체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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