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세 번째 하루
반나절이 넘게 우유니에서 라파즈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까마가 아닌 세미 까마를 이용해서 왔는데(100 bol), 좌석 등급 탓인지 버스 기사 분의 잘못된 선택인지 비포장 도로의 연속이었다. 덜커어더어덩덩컹. 여행 중 최악으로 기억될 버스였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기를 12시간 내내 생각했다. 전날 저녁 8시에 출발해서 아침 10시가 넘어 라파즈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멈춰있는 땅에게 감사했다.
오늘은 여행하면서 만난 분들의 추천으로 따리하(Tarija)라는 소도시를 갈 계획이었다. 원래 유니크한 것을 좋아하던 나였다. 추천했던 분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듣고 나니, 그 곳에 가야할 것 같았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곧장 라파즈 공항으로 향했다. 미리 예매해둔 D의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말이다. 나는 왜 다른 수단보다 적재율을 최대로 채우려고 하는 비행기를 직접 가서 예매할 생각을 한 것일까 아직도 자책한다. 여행 중에 컴퓨터를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귀찮음'과 '괜찮겠지'라는 여행이 주는 안일함이 준 결정이었다. D가 체크인을 하고 난 뒤에 나도 카운터에 서서 같은 시간행 표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표가 없단다.
??
처음에는 왜 안된다는 건지 이해가 안됐다. 이런 경우의 수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당연히 좌석이 꽉 차버리면 이용할 수 없는 것... 여행 처음에 핸드폰을 놓고 왔을 때 이후로 제일 당황스러웠을 때였다. 여행일자는 고작 2일 남았고 이에 같이 가지 못하면 나는 바로 보고타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보고타행 티켓이 있을 경우였지만 :P)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였다.
비행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엇고 공항 안에 있는 카페에 음료를 시키고 앉았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나를 신경 쓰는 D가 보였지만 위로가 되긴 어려웠다. 독립심이 강한 것이 강점이라면 강점이었는데 준비 하나 못한 자책감에 괴로웠다... 그래도 시간은 가기에 일단 라파즈에서 1박을 하고 보고타로 되돌아가는 계획을 머리 속으로 구상하게 되었다. 비행 이륙 하기 몇시간 전이었는지는 기억은 안나지만 그냥 절박함에 카운터로 돌아가 다시 물어봤다.
"따리하행 표 있나요?"
"네."
정말 고맙게도 직전에 누가 노쇼를 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복합적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휘몰아쳐 왔다.
자책했던 나를 위로하는 안도감, 여행을 계획한 대로 마칠 수 있겠다는 기쁨, 눈치봤던 D에 대한 미안함의 것들 말이다. 갑작스레 온 기쁨으로 공항을 뛰어다녔다.
따리하에 도착하니 거무스레한 하늘이 반겼다. 택시를 타고 서둘리 숙소로 향했다. 이곳에서 길거리 곳곳에 먹음직한 노점들이 보였다. 따리하는 날씨 좋은 도시, 와인을 만드는 도시라고 알고 있기에 와인을 꼭 먹어보겠다고 생각했다. 늦었지만 치킨과 와인을 사들고 저녁을 먹었다. 날씨 좋은 밤, 식사는 맛있었고 이야기는 즐거웠다. 와인 한 병으로는 아쉬운 밤에 곳곳을 찾아 돌아다니며 와인을 구했던 기억도 어느새 지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