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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학 May 28. 2019

배움의 끝

죽을 때까지 배우며 살아가는 우리

삶은 배움으로 시작되어 쌓인 경험치를 통해 하나의 성을 건축해 나가는 것이다. 멋진 성이 완성되어 나만의 왕국이 지어지면 그때는 아주 멋진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우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인지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들 말한다. 늙어서도 깨닫는 진리들이 있으며, 초등학교 1학년에게도 분명하게 배울 점을 찾을 수 있다. 부모도 아이를 교육시키지만 그 속에서 부모도 아이에게 인생을 배우기도 한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나의 지식을 남에게 전달해주는 의미가 가장 크지만 내 지식을 꺼냄으로써 나 또한 한 번 더 복습하는 시간이 됨으로 두 번 배우는 것이라는 서양 속담까지 존재한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자신하며 자만심에 빠지기 일쑤다. 사회가 만든 하나의 계급들로 사람을 판단해버려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잊었다. 4년제 인 서울대를 나온 사람이 전문대를 나온 사람보다 더 낫다는 인식이나, 어르신들이 애들 말은 듣지 않는 것들도 사회가 만들어낸 고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자신을 낮춰 배울 생각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자신의 배움이 어느 정도 쌓였다 싶으면 거기서 안주하는 것이 문제다. 경력자가 텃세를 부리는 이유도 자신이 만족할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세상에서 인정받은 사람들 중에는 절대로 그런 사람은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지식이 원이라고 치면, 원 밖의 것들이 내가 아직 모르는 지식들이라고 표현했다. 원이 커질수록 그 면에 닿은 면적은 커지니 내가 많이 알수록 내가 모르는 것들은 더욱 넘쳐난다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들이 한마음으로 뜨겁게 달구어지던 때를 기억한다. 태극전사들을 4강 신화의 주역으로 만들어준 감독 거스 히딩크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말을 하나 남겼다.

 

“난 아직 배가 고프다.”

 

완벽에 가까울 수는 있어도 완벽할 수는 없다. 노력이 없는 성과는 없으며, 날 때부터 잘난 사람 또한 없다. 배우며 자라고, 경험을 통해서 비로써 내가 만들어진다. 조금의 영향만 가해져도 언제든지 변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불안정한 존재다. 익숙함에 속아서 나태해지기도 하고, 자만함에 빠져버려 교육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치를 떨기도 한다.

 

“이 나이에 무슨, 내가 그럴 짬밥이냐?”

 

그 어떤 명품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용도를 잃어버린다. 결국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빛을 잃는 것과 같다. 배움에 있어서 위아래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을 순수하게 인정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한다. 배움을 멈춘 사람은 발전 또한 멈춰 버리니 결국 녹이 슬어버릴 것이다.

 

교육의 가장 큰 목표는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다.
 -허버트 스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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