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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학 Feb 23. 2019

끝 없는 리더들의 향연

당신도 누군가의 리더일지도?

리더(leader) 조직이나 어떠한 단체에서 모두를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 


즉, 지도자와 같은 의미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지도자들의 지휘를 따르고 가끔은 누군가를 위해 앞에 나가 지휘를 할 때도 있다. 태어나서부터 가정의 리더는 부모님이다. 대가족이라면 그 위에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지도자로서 자신의 교육을 맡고 있는 담임선생님이며 그 뒤로도 회사에 취직하면 상사, 대표가 자신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


이것은 보편화 된 전형적인 큰 틀에 불과하다. 조금만 더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더욱 많은 범위에서 지도자들이 등장하곤 한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노는 친구들의 무리는 나뉘어져 있다. 어떤 학교든지 전교생이 모두가 친구이지는 않으니까. 그 무리의 안에서도 리더들은 존재한다. 대학에서도 학생들끼리 정한 학생회, 그 안에 또 학생회장. 꽤 많은 상황에서 언제나 리더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9월에 개봉한 영화 안시성을 보았다. 고구려와 당나라가 안시성을 두고 벌인 공방전을 주제로 그린 액션영화다. 영화는 그저 역사를 배경으로 만든 칼부림 영화가 아니라 어떠한 지도자를 섬기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을 보여주는 듯했다.


영화 안시성 스틸컷



영화에서 리더자의 역할은 3명이다. 고구려의 장군이자 이제는 혁명가로 재평가 되고 있는 연개소문, 그런 그의 눈엣 가시로 여겨지는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 마지막으로 고구려를 침공한 당나라 태종 이세민.


각각의 지도자의 생각과 성향은 모두 다르게 표현되는데 연개소문은 그저 전쟁의 승리만을 위해서 싸울 땐 싸우고 버릴 땐 버리는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뜻에 어긋나면 곧바로 적으로 간주하며 고구려의 승리에 걸림돌이라 생각하면 가차 없이 없애버리는 성향이었다. 때문에 힘에 많이 의존하여 당나라와 정면승부를 펼쳤으며 그에 따른 희생들을 치러야했다.


양만춘은 그런 연개소문과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인다. 생각을 조금 더 유연하게 할 줄 알았으며 전투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주변을 많이 활용했다.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기 위해서 뜻을 굽히지 않자 반역자로 낙인이 되지만 안시성 사람들은 성주로서 그에 걸 맞는 대우를 했다. 당나라 황제 이세민은 그저 힘을 믿고 정면 돌파하는 무식함을 보였지만 이것은 그저 픽션이기에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었다.


전쟁이 빈번하던 그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번 상상해보자. 누구를 따르냐에 따라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어나간다. 현재도 그렇다. 올바른 지도자를 만나야 올바른 길로 인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부모를 만나고 어떤 선생을 만나고 어떤 종교를 다니며, 어떤 대통령을 뽑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 혹은 그보다 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누구를 따르고 누구를 인도할 것인지는 본인의 판단에 맡겨지겠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누군가의 지도아래, 혹은 누군가를 지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그것이 올바른 길인가 아닌가를 구분하기엔 벌써 익숙해져있을지도 모르니, 항상 깨어있도록 주의하는 습관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갖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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